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 [연합] |
[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식료품의 원재룟값이 50%가량 떨어졌는데도 제품가격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원재룟값이 올라갈 때와 달리, 내려갈 때는 제품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식품업계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큰 폭 늘어난 것도 이런 ‘가격 눈속임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과도한 이윤 추구 탓에 물가 불안이 커지는 이른바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이 깔렸다는 뜻이다.
3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작년 12월 119.1에서 올해 1월 118.0으로 1.0% 하락했다.
지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인 지난 2022년 3월 역대 최고치인 159.7을 찍은 이후로 하락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지수를 구성하는 5개 품목(곡물·유지류·육류·유제품·설탕) 가운데 곡물과 유지류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곡물과 유지류 가격지수는 2022년 고점 대비 각각 25%, 30% 내리면서 글로벌 식료품 원가 하락을 이끌었다.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곡물가격지수도 2022년 중순 730선을 훌쩍 웃돌았다가, 현재는 390선으로 고점을 낮추면서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개별 품목별로는 곡물가 하락세가 더 뚜렷하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선물 시장의 밀의 1부셸(27.2㎏)당 가격은 2월 평균 5.84달러로, 지난 2022년 5월 11.46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같은 기간 옥수수 가격도 부셸당 7.84달러에서 4.27달러로 45.5% 떨어졌다. 2022년 3월 부셸당 16.73달러로 올랐던 대두 가격도 지난달 11.74달러로 29.8% 하락했다.
주요 식료품의 원재료 가격이 내려가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체감물가는 여전히 높다.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곰표 밀가루 중력다목적용(이하 100g)은 지난달 198원으로, 2022년 5월 154원보다 44원 올랐다. 백설 찰밀가루는 같은 기간 260원에서 249원으로 11원 떨어졌다. 백설 소면은 353원에서 379원으로, 옛날국수 소면은 405원에서 452원으로 각각 26원, 47원씩 올랐다. 오뚜기 콩기름(이하 100ml)은 552원에서 673원으로, 해표 맑고 신선한 식용유도 493원에서 556원으로 비교적 큰 폭 올랐다.
이들 제품의 주요 원룟값이 50% 가까이 내렸지만, 제품 판매가격은 내려갈 기미 없이 기존의 인상 폭을 유지한 셈이다. '장바구니 물가'에 직결된 식료품 물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으로 해석된다.
지난 1월 식료품 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6.0% 상승하면서 넉 달째 6%대 오름세를 이어갔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 폭(2.8%)의 두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작황 부진과 맞물린 사과·배 등 과일값 강세와 더불어, 높은 식료품 가격이 인플레이션을 주도했다는 분석이다.
반면 식품업체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급증했다. 수출실적 등 다른 요인도 변수로 작용하는 데다 국제 곡물 가격만으로 원가를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낮아진 원재룟값 부담은 수익증대의 기반이 됐다는 분석이다.
풀무원의 지난해 연간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619억원으로 전년보다 135.4% 증가했다. 오뚜기의 지난해 영업이익도 2549억원으로 전년보다 37.3% 늘었다. 농심도 연결기준으로 89.1% 불어난 212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동원F&B 영업이익은 1667억원으로 전년보다 29.5% 증가했다. 빙그레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간 1000억원을 웃도는 영업이익을 냈다. 전년보다 무려 185.2% 불어난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