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ELS 확정손실 1.1조…‘차등배상’ 원칙에 가입자 ‘발칵’

5대 주요 은행이 판매한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의 손실 확정액이 이미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만기 도래 상품이 늘수록 손실 규모도 더 커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투자자 피해 배상을 위한 책임 분담 기준안을 마련하고 있는 가운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일괄 배상은 없다”고 못박으면서 홍콩ELS 가입자들의 희비도 엇갈릴 전망이다.

▶변동성 높은 홍콩H지수…손실액 1.1조원= 6일 금융권에 따르면 5개 주요 은행(국민·신한·하나·농협·SC제일은행)이 판매한 홍콩 ELS 상품의 만기 도래 원금은 이달 4일 기준 2조11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중 상환된 금액은 절반에 못미치는 9466억원에 불과하다. 반면 손실액은 1조649억원으로 평균 손실율이 52.98%에 달한다.

손실액은 계속 증가 추세다. 지난달 27일까지만 해도 손실액은 1조원보다 적은 9606억원이었지만, 하루만에 659억원이 늘어나 1조원을 넘겼다. 본격적인 손실이 발생한 지 두 달 여만에 1조1000억원 수준을 기록한 셈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손실 증가에 속도가 붙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은행들은 손실액에 따라 배상 금액도 달라질 수 있어 홍콩 H지수 추이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홍콩H지수는 지난달 말 5800을 넘기며 다시 회복되는 듯 했지만, 이날 기준 5500대로 다시 내려 앉으며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 변동성이 높은 수치인 만큼 투자자들의 손실액이 순식간에 줄어들지는 않을 거라는 게 업계의 시선이다.

손실 규모가 이처럼 확대되는 가운데 금감원은 배상 원칙을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 같은 ‘일괄 배상’이 아니라 ‘차등 배상’으로 세우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연령층, 투자 경험, 설명의무, 적합성 원칙, 부당 권유 등 요소별로 책임 소재를 따져 배상비율을 0%에서 100%까지 차등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전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괄 배상으로는 준비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으며 “연령층, 투자 경험, 투자 목적, 창구에서 어떤 설명을 들었는지 등 수십 가지 요소를 매트릭스에 반영해 어떤 경우에 소비자가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고, 어떤 경우 은행·증권사가 책임져야 하는지 정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운 분들을 상대로 상품을 판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며 법률상 계약취소 사유에 해당하는 사례에는 100% 배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반면,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이 적용될 만한 사례에는 “아예 배상이 안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판매사 현장점검을 통해 불완전판매 정황도 일부 확인했다. 이 원장은 “특정 금융회사는 ELS 20년 실적을 분석하면 20% 이상 손실 확률이 8% 정도라는 상품 설명을 걷어냈다. 10년만 분석하면 사실상 손실률이 0%로 수렴한다”며 “의도를 갖지 않고선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적으로 담은 책임분담 기준안을 오는 11일 내놓을 계획이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 안건으로 상정해 기준안을 확정하면, 이를 참고로 사안별 배상비율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차등배상’ 원칙에 가입자들 희비…은행은 “당연” 반응= 금감원이 차등 배상을 진행하기로 하면서 가입자들은 상황에 따라 입장이 갈리고 있다. DLF 사태 때 투자 경험이 없고 난청인 79세 치매환자에게 역대 최고인 80%의 배상비율이 적용됐던 사례에 비춰볼 때 적합성 원칙이나 설명의무 위반이 명확한 경우엔 전액 배상도 가능해졌지만, 투자 경험이 있거나 자기책임 원칙이 적용될 만한 가입자는 원금을 아예 건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 가입자들은 15일 집회를 열고 불완전판매에 의한 손실을 전액 배상할 것을 촉구할 계획이다. 길성주 홍콩ELS피해자모임 위원장은 이 원장의 인터뷰에 대해 “설명의무 등을 위반하고 조작한 사례가 수두룩한데도 은행에서 잡아떼면 배상비율이 0%가 될 수도 있다. (가입자) 갈라치기나 다름없다”며 “금감원장이 아니라 은행을 감싸는 은감원장 같다”고 비판했다.

반면 은행들은 차등배상 원칙이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DLF 사태 당시 때는 상품 구조 자체에 결함이 있었던 반면, ELS는 잘못된 상품이 아닐 뿐더러 투자자마다 불완전판매 방식이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차등배상 원칙에 방점이 찍히면서 일괄배상 보다는 예상 배상액이 줄었지만, 여전히 ELS 감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배상 규모에 대해 단언하기 어렵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모든 투자자에게 전액 배상’과 같은 일괄배상 원칙은 나오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며 “ELS 사태가 판매 과정에서의 문제들을 찾아서 불완전판매로 접근한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투자자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0~100%의 차등배상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의 한 부행장은 “일괄배상이 없다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메시지는 원론적인 이야기”라며 “금융당국에서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이 나와봐야 자율배상 등에 대해 적극 해석·검토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승연·홍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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