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현관 도어락·경비원 없어도…대법 “주거침입 성립”

대법원 전경 [연합]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공동현관 도어락·경비원 등 보안장치가 없어도 무단으로 피해자의 집 앞까지 찾아갔다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앞서 2심은 빌라 건물에서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유죄 취지로 판결을 뒤집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권영준)는 주거침입 혐의를 받은 남성 A(40)씨에 대한 사건에서 이같은 법리를 선언했다. 대법원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에 대해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21년 6~7월께 3회에 걸쳐 전 여자친구’의 집 문 앞까지 무단 침입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피해자의 집 현관문에 ‘게임은 시작되었다’는 문구가 기재된 마스크를 걸어놓고, 집 안에 있는 피해자의 대화 등을 무단으로 녹음한 것으로 밝혀졌다.

A씨는 별다른 제지 없이 피해자의 집 문 앞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해당 집은 10세대 정도가 거주하는 다세대주택으로 공동현관 도어락이나 경비원이 없었고, CC(폐쇄회로)TV 등도 작동하지 않았다.

검찰은 A씨를 형법상 주거침입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A씨 측은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해당 다세대주택 내 계단 또는 복도 등에 간 사실은 있지만 보안장치가 없었고, 복도에 있다가 조용히 나왔으므로 피해자의 평온이 침해됐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했다.

1심은 유죄를 인정했다. 벌금 500만원이었다. 1심을 맡은 서울북부지법 형사11단독 이창원 판사는 지난해 4월 “대법원 판례상 주거침입죄의 대상은 공용 계단과 복도 등이 포함된다”며 “피해자의 집에 보안장치가 없긴 했지만 이런 경우라도 다세대주택 내 계단과 복도에서 주거의 평온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양형이유에 대해 “A씨가 피해잦의 주거의 평온을 수차례에 걸쳐 침해했을 뿐 아니라 피해자가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피해자가 A씨의 처벌은 원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A씨의 항소로 열린 2심에선 무죄가 선고됐다. 2심을 맡은 서울북부지법 1-2형사부(부장 한성진)는 지난해 9월, 이같이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무죄를 택한 이유로 “피해자의 거주지가 있는 빌라 건물에서 외형적으로 외부인의 무단출입을 통제·관리하고 있는 사정을 알 수 있는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2심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유죄 취지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다세대주택 내 공동 현관, 계단 등은 공중에게 개방된 상가·공공기관 등과 비교할 때 사생활 보호의 필요성이 크다”며 “외부인의 출입이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CCTV 작동하지 않았더라도 외부에 ‘CCTV 작동 중’이라는 문구가 있어 외부인의 무단출입을 통제한다는 취지로 평가할 수 있고, 피해자가 공포감을 느낀 점 등을 고려하면 A씨가 피해자 주거의 평온상태를 해쳤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그런데도 무죄를 선고한 2심 판단엔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다시 판단하도록 사건을 돌려보낸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A씨는 4번째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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