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18년만에 신세계그룹 회장 승진…‘수익성 중심’ 체질개선 드라이브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정용진 총괄부회장(56)이 신세계그룹 회장으로 8일 승진했다. 부회장이 된 지 18년 만이다. 그룹은 ‘강한 리더십’을 통해 전례 없는 위기를 타개하겠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지난해 이마트의 ‘사상 첫 연간 적자’라는 비상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안게 됐다. 격변하는 시장 속에서 ‘정용진 체제’가 힘을 받으며 향후 고강도 구조조정이 잇따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신세계그룹은 “경쟁이 치열해지는 유통 시장에서 위기를 극복할 완전히 다른 차원의 혁신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인사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정 회장 승진이 담은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며 “과거 ‘1등 유통기업’ 자리에 머물지 않고 도약의 갈림길에 서 있는 신세계그룹이 정 신임 회장에게 부여한 역할은 막중하다”고 강조했다.

80대인 이명희 회장이 그룹 후계자 구도를 공고히 했다는 시각도 나온다. 정 회장이 50대 중반인 만큼 회장 자리를 승계할 시기라는 분석이다. 경쟁사인 롯데그룹의 신동빈 회장이 지난 2011년 56세의 나이로 회장으로 승진한 사례와 같은 맥락이다. 이명희 회장은 그룹 총괄회장으로 신세계그룹의 총수 역할을 유지하면서 정 회장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1968년생인 정 회장은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과 이명희 총괄회장의 장남이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립자의 외손자이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동갑내기 사촌이다. 정 회장은 미국 브라운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후지쯔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95년 신세계 전략기획실 전략팀 이사로 입사해 신세계백화점 기획조정실 상무, 신세계 경영지원실 부사장을 거쳤다. 2006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됐다.

신세계그룹은 2015년 말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부사장을 백화점 총괄사장으로 승진시키며 본격적인 ‘남매 경영’에 돌입했다. 정 부회장은 이마트·식품·호텔 부문을, 동생 정유경 총괄사장은 백화점과 면세점, 패션 부문을 각각 맡고 있다. 다만 이번 인사에서 지분 구조 변동이나 정유경 총괄사장의 지위 변화는 없다.

현재 신세계그룹은 유통업의 지각변동 속에서 주력사 이마트의 사상 첫 적자 전환이라는 위기에 직면했다. 이마트는 지난해 기준 매출액 29조4722억원을 냈지만, 46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부동산 경기 악화로 자회사 신세계건설의 대규모 적자를 실적 악화의 배경으로 내세웠지만, 유통업만 떼 놓고 봐도 실적 부진이 역력했다. 실제 이마트 사업부의 별도 기준 영업이익은 1880억원으로 전년 대비 709억원이 줄었다. 특히 ‘아픈 손가락’으로 꼽히는 할인점(마트)의 영업손실은 이보다 큰 858억원에 달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지난 2월 23일 ‘신세계 남산’에서 열린 신입사원 수료식에서 신입사원들과 셀카를 함께 찍고 있다. [신세계그룹 제공]

이런 상황에서 쿠팡은 창립 13년 만인 지난해 첫 연간 흑자 및 매출 30조원을 달성하며 유통업계의 강자로 떠올랐다. 업계는 유통 3사가 ‘쿠이마롯(쿠팡·이마트·롯데쇼핑)’으로 재편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여기에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의 공세가 국내 유통업의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지난해 온라인 쇼핑 매출 비중이 오프라인 매출을 사상 처음으로 넘어서며 유통업의 지각변동은 더 격렬해졌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9월 정기 임원 인사에서 최고경영자(CEO) 40%를 교체하는 대대적인 쇄신 작업을 진행했다. ‘구원투수’로 한채양 조선호텔앤리조트 대표를 이마트 대표로 선임하면서 그룹 전반에 통합 대표 체제를 가동했다. 한 대표가 이마트·이마트24·이마트에브리데이를 맡고 신세계푸드·신세계L&B는 송현석 대표가 겸직하며 계열사 간 시너지를 키운다는 구상이다. 11월에는 그룹 경영전략실장을 8년 만에 임영록 신세계프라퍼티 대표로 교체하며 변화를 예고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신세계그룹 내 구조조정과 경영 효율화를 위한 작업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제기한다. 정 회장이 연초부터 수익성 강화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조직은 성과를 내기 위해 존재하고 기업은 수익을 내야 지속 가능할 수 있다”면서 “2024년에는 경영 의사 결정에 수익성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9년 창사 후 사상 첫 분기 적자를 경험한 이마트는 당시 이갑수 대표를 비롯한 임원 조기 퇴진 및 매각·자산 유동화 등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했다. 연간 첫 적자라는 더 큰 위기 앞에서 과거에 없는 대규모 변화가 예상되는 이유다. 최근 신세계건설이 레저사업 부문을 조선호텔앤리조트에 매각해 재무건전성 개선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 추가 인사나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며 “그룹이 직면한 어려운 시기에 위기를 돌파하려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지난 1월 15일 스타필드 수원 현장을 방문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운영계획을 듣고 있다. [신세계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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