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11일 발표한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분쟁 조정 기준안은 판매사와 투자자의 특성과 책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배상 비율을 가감토록 했다. 판매원칙 위반 정도가 크거나 소비자보호체계가 미흡하면 손실의 최대 100%까지 배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개인투자자의 반복 가입이 많은 공모펀드라는 것을 감안해 ELS 투자경험이 많거나 금융지식 수준이 높은 고객 등은 자기투자책임 원칙에 따라 배상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청력 약한데 “이해했다” 답…홍콩H지수 ELS불완전판매 적발=판매사들은 H지수 변동성이 확대되는 시기에 ELS 판매를 확대하도록 핵심성과지표(KPI)를 설계해 전사적으로 무리한 실적경쟁을 조장하면서도, 판매한도를 상향하도록 리스크관리 기준을 변경하고 비예금상품위원회를 형식적으로 운영하는 등 소비자보호에 소홀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고위험 상품 투자에 적합하지 않은 고객에게 판매가 가능하도록 상품판매 기준을 임의 조정하거나 판매시스템을 설계하고, 투자자 성향분석 필수 확인항목을 누락하는 사례도 적발됐다. ELS 상품 판매시 설명해야 하는 손실위험 시나리오, 투자위험등급 유의사항을 누락·왜곡하는 경우도 있었다.
영업점 판매과정에서는 안정적 투자성향의 고객에게 투자성향 상향을 유도하거나 청력이 약한 고령투자자에게 상품내용을 ‘이해했다’라고 답하게 하고, 영업점 방문이 어려운 투자자를 대신해 투자성향 조사, 가입신청 등을 대리 작성·서명하는 사례까지 발견됐다.
▶배상비율엔 투자책임도 고려…ELS투자 경험 많다면 배상 못받을 수도=금감원은 내부통제 부실 등 불완전판매가 확인된 만큼 기본배상비율 20~40%를 일괄 적용하면서도, 판매사와 투자자 상황에 따라 배상비율을 가감 또는 차감하도록 했다.
가산항목은 ▷예적금 가입목적 10%포인트 ▷금융취약계층 5~15%포인트 ▷ELS 최초 투자 5%포인트 ▷자료 유지·관리 및 모니터링콜 부실 5~10%포인트 ▷비영리공익법인 5%포인트 등 최대 45%포인트다.
차감항목은 ▷ELS 투자경험 2~25%포인트, ▷가입·수익규모 5~15%포인트 ▷금융상품 이해능력 5~10%포인트 등 최대 45%포인트이며, 그 외에 기타조정항목을 통해 ±10%포인트 추가 조정이 가능하다.
▶“투자자 책임도 있다” ELS 가입만 수십 차례 반복했다면, 배상비율 0%도= 금감원은 분쟁조정 기준안에 따라 다양한 배상비율이 나타날 수 있다며 상황별 적용 예시도 제공했다.
80대 초반 A씨는 2021년 1월 예적금 가입 목적으로 은행을 찾았다가 직원 권유로 홍콩 H지수 ELS 상품에 2500만원을 가입했고, 올해 1월 만기가 도래해 손실이 확정됐다.
해당 은행은 상품 설명 당시 투자위험 일부를 누락하고 왜곡된 내용을 전달하는 등 설명의무 위반과 내부통제 부실 소지가 있었다. 창구에선 개별적 적합성 원칙 위반과 부당권유 금지 위반 및 고령자 보호기준 미준수 사실도 발생했다.
이 경우, 설명의무 위반에 따른 기본배상비율 20%에 개별 적합성 원칙·부당권유 금지 위반에 따라 배상비율 20%가 가산된다. 공통가중항목인 내부통제 부실(10%포인트)까지 더하면 판매사 책임에 따른 배상비율은 50%가 나온다.
여기에 가입 당시 만 80세 이상이면서 고령자 보호기준이 준수되지 않은 점(15%포인트)과 예적금 가입목적(10%포인트), ELS 상품 경험이 2회로 적고 손실경험도 없는 점, 가입금액이 5000만원 이하인 점 등을 고려할 때 손실액의 75%까지 배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ELS 가입 경험이 62회이고 손실 경험이 1회 있는 50대 B씨는 2021년 1월 은행의 권유로 1억원을 가입했다가 손실이 발생했지만 배상비율은 0% 내외 수준으로 예상됐다.
설명의무 위반에 따른 기본배상비율 20%에 내부통제 부실(10%포인트), 투자권유자료 보관의무 위반(5%포인트) 등 판매사 책임만 보면 35% 배상이 가능하지만, 차감항목에 걸리는 것들이 많아 그만큼 깎이기 때문이다. ELS 가입경험(-10%포인트)과 손실경험(-15포인트), 5000만원 이상~1억원 이하인 가입금액(-5%포인트), 이번 손실규모를 초과하는 ELS 누적이익(-10%포인트) 등이다.
▶금감원, 분쟁조정 진행·제도개선 추진…“자율배상에 적극 협조” 당부=금감원은 이번 기준안에 따라 대표사례에 대한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분쟁조정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예정이다. 각 판매사도 기준안에 따라 향후 투자자와의 사적화해 절차를 통해 자율 배상을 실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은 검사에서 확인된 위법부당행위에 대해서는 관련 법규와 절차에 따라 엄중 조치할 예정이다. 다만, 판매사의 피해 배상, 검사 지적사항 시정 등 사후 수습 노력을 참작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도 자율배상을 실시하는 판매사에 대해서는 제재시 감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위원회와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개선도 추진한다. 검사 결과 분석과 해외사례 연구,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금융소비자 보호와 금융산업 발전을 균형있게 고려한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제도 개선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고난도 상품에서 예외적으로 허용한 ELS 상품에서 대규모 불완전판매가 발생한 만큼, 판매상품 범위 재검토도 이뤄진다.
이복현 원장은 이번 분쟁조정 기준안에 대해 “억울하게 손실을 본 투자자가 충분히 보상 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도 시장원리의 근간인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무거운 마음으로 심사숙고해 마련했다”며 “기준안에 따라 배상이 원활히 이뤄져 법적다툼의 장기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강승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