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지난 2월 신입사원 면접에 참석해 질의 응답을 하고 있다. [신세계그룹 제공] |
[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신세계그룹이 이르면 내달부터 임원진의 수시 인사를 단행한다. 그룹 전통인 연말 정기 인사 체계의 틀을 벗어난 결정이다. 기대 실적에 못 미치거나 경영상 오류가 발생하면 최고경영자(CEO)라도 수시로 교체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겼다. 특히 이번 인사에는 성과에 맞는 공정한 보상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인사제도가 적용된다. 정용진 회장 승진 이후 첫 내부 시스템 개혁이다. 신상필벌이 강화되는 만큼 그룹 내부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CEO 실적이 부진하거나 문제가 있어도 정기인사 때까지 기다려주는 관행이 있었는데 위기 상황인 지금은 기다려줄 여유가 없다”며 “(실적 부진 등으로) 인사 수요가 있으면 바로바로 인사 조처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번 임원진 수시 인사에는 새로운 핵심성과지표(KPI)가 적용된다. KPI는 성과 측정의 정성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정량적인 지표를 중심으로 조직 또는 개인의 성과를 계량화한 것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11월 그룹의 ‘콘트롤타워’역할을 하는 경영전략실을 개편하면서 인사제도 개편을 위한 두 개의 전담팀을 만들었다. ‘KTF’(K태스크포스)와 ‘PTF’(P태스크포스)다. K태스크포스는 구성원이 수긍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예측할 수 있는 ‘신세계식’ KPI 수립을 목표로 했다. PTF는 이를 토대로 기존의 인사 제도를 전면적으로 혁신하는 임무를 맡았다. 정 회장은 세부 개편안을 수시로 보고받고 큰 틀의 방향을 주문하는 등 제도 개편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그룹 주요 계열사가 직면한 실적 위기를 타개하려면 경영 전략에 앞서 체계적인 성과 시스템부터 구축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실적·성과를 불문하고 모두 혜택을 똑같이 나누는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책임 경영은 물론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실제 신세계는 성과 보상시스템이 개인별 성과 차를 반영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신세계 성과보상제의 기본 틀은 등급제다. 예를 들어 이마트가 A등급을 받으면 개인 성과와 관계 없이 직급별로 똑같은 성과급을 받게 된다. 다른 직원보다 열심히 일할 동인도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임원 연봉에서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중도 약 20%로, 다른 그룹(평균 약 50%)보다 낮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지난 2월 '신세계 남산'에서 열린 신입사원 수료식에서 질의 응답을 하고 있다. [신세계그룹 제공] |
정 회장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는 전언이다. 경영전략실 개편을 계기로 TF까지 만들어 이를 전면적으로 손질하려 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정 회장이 지난해 11월 경영전략실 개편 이후 두 번째 가진 전략회의에서 “철저하게 성과에 기반한 인사·보상 체계를 갖춰야 한다”며 대대적인 인사시스템 개편을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에 마련된 새 인사 제도는 정 회장의 이런 인사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성과에 맞는 적합한 보상과 ‘신상필벌’이 두 축이다. 그룹 안팎에서는 핵심 계열사인 이마트와 건설 경기 악화 여파로 유동성 위기에 빠진 신세계건설, 적자 늪에 빠진 SSG닷컴·G마켓 등 이커머스 계열사가 새 인사제도의 1차 타깃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마트는 쿠팡·알리익스프레스 등 이커머스의 거센 공세 속에 최근 실적 정체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신세계건설 대규모 손실 여파로 1993년 창립 이래 처음으로 연간 기준 영업손익이 적자 전환했다. 연간 매출 규모(약 29조4000억원)도 쿠팡(약 31조8000억원)에 추월당했다.
지난해 9월 ‘구원투수’로 투입된 한채양 이마트 대표는 본업 경쟁력 강화의 기치 아래 ‘가격 파격 선언’으로 유통업계의 최저가 경쟁에 뛰어들었다. 한동안 중단된 출점 전략 역시 공식화했다. 이러한 전략의 성패는 분기 또는 연간 실적으로 구체화할 될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건설은 유동성 위기 탈출 및 재무 정상화, 이커머스 계열사는 체질 개선을 통한 적자 구조 탈피와 지속 가능한 성장 체계 구축이 각각 경영 성과의 기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사제도 개편이 현실화하면서 내부에서 체감하는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그룹 계열사 한 관계자는 “그룹 창립 이래 수시 인사를 제도화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어느 정도 시간을 줬는데도 실적 효과가 가시화하지 않으면 단명할 수 있다는 점을 공식 선언한 셈이라 주요 계열사 CEO들이 벌써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