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수 듀엣’ 유리상자 “학전은 인생을 바꿔준 공간” [인터뷰]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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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한눈에 알아본 ‘내 사람’을 향한 고백의 순간(‘사랑해도 될까요’), ‘새햐얀 드레스, 수줍은 발걸음’으로 들어서는 설레는 시작(‘신부에게’) 등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엔 언제나 그들의 노래가 있었다. 새 출발을 하는 1500쌍의 결혼을 축하한 ‘축가왕’이자 1990년대 ‘김나박이’(K2김성면, 일기예보 나들, 유리상자 박승화 이세준)로 불리는 원조 보컬 강자, 바로 유리상자(박승화·이세준)다.

어느덧 데뷔 27년차. 1997년 12월 학전에서 그들의 가수 인생은 시작됐다.

“지난 27년을 통틀어 가장 의미 있었던 순간은 학전 소극장에서의 첫 공연이에요. 진짜 가수가 되는 순간이었어요. 오랜 꿈이 현실이 됐고, 공연을 마치며 정말 오랫동안 노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30여 년간 한국 공연문화의 명맥을 이어온 학전의 폐관을 앞두고 진행한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마친 유리상자는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리상자 ‘학전 어게인’ 콘서트 [에이치케이 엔터프로 제공]
“학전은 인생을 바꿔준 공간”

지금이야 ‘축가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유리상자의 출발은 슬픈 마이너 발라드인 ‘순애보’였다. 학전 소극장에 데뷔곡 ‘순애보’가 내려앉으며 유리상자에게 음악의 길은 시작됐다. 유리상자는 “‘순애보’와 ‘학전’은 인생을 바꿔준 곡과 공간”이라며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유리상자의 목소리는 따뜻한 봄날을 떠올리게 한다. 추운 계절을 견뎌낸 뒤 마주한 봄 햇살처럼 언제나 좋은 기억과 함께 찾아오고, 온화한 감성에 모질었던 마음은 눈 녹듯 녹아내린다. 유리상자표 ‘달달한 발라드’가 소중한 기억을 되돌려서다. 많은 히트곡이 있지만, 2004년 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 수록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사랑해도 될까요’는 이른바 ‘국민 고백송’ 반열에 올랐다.

유리상자 [마포문화재단 제공]

“당시 여자친구(지금의 아내)와 같이 보다가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곡 분위기가 워낙 달라서 처음엔 우리 노래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제 파트에서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는 걸 발견하고 웃었어요. 그 드라마 덕분에 그해 전국 투어 10여 개 도시가 완전 매진됐고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감사한 행운이었어요.” (이세준)

가수로서의 시작을 함께한 ‘학전과의 이별’은 두 사람에게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학전 공연을 준비하는 모든 순간마다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묻어났다. 유리상자는 “우리에게 고향 같은 이곳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며 “그동안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마지막 공연까지 마치니, 유리상자의 마음에 학전의 의미는 더 깊이 새겨진다. 두 사람은 “소극장의 대표격인 학전은 무대 예술의 풀뿌리다. 가난한 아티스트와 관객을 이어주는 소통의 장이었다”며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며 이젠 그 역할을 여러 다른 매체와 공간에게 내어주고 퇴장하지만, 우리 마음과 추억속에 늘 함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리상자 [마포문화재단 제공]
27년 장수 비결은 ‘애정 어린 무관심’

유리상자의 두 멤버 박승화·이세준이 쌓아 올리는 음색의 조화와 따뜻한 감성은 이들의 가장 큰 무기다. 두 사람은 “지금의 음악들이 우리가 모두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변화를 시도한 적도 있었지만, 대중이 원하는 방향 역시 ‘착한 고백송’이다.

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쪽으로 치우친 색깔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대중이 유리상자에게 바라는 방향은 늘 일관됐다“며 ”유리상자의 색깔은 대중과 팬분들이 만들어 줬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꾸준히 이어온 유리상자만의 색깔이 담겨있는 음악이 오랜 활동의 비결인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우리 노래를 들으면 ‘유리상자 같은 노래’라며 좋아해주시더라고요.” (박승화)

순수한 어떤 날들의 고백처럼 그 자리에 머물러주길 바라는 대중의 마음이 유리상자에게도 투영됐다. 이세준은 “크게 격변하지 않는 외모(?)와 목소리도 유리상자의 강점”이라며 “사람은 늙어도 음악은 늙지 않으려 노력한다. 목소리와 창법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앞서 가는 많은 선배들을 닮아 가야겠다고 다짐한다”고 했다.

시대를 초월해 불리는 노래들은 화이트데이를 맞아 다시 울린다. 유리상자는 오는 14일 마포문화재단이 기획한 ‘어떤가요8 화이트데이 듀엣 특집’으로 관객과 만난다. 서울패의 위일청, 녹색지대 곽창선과 함께 꾸미는 무대로 유리상자가 대미를 장식한다. 박승화는 “‘웃어요’를 시작으로 ‘사랑해도 될까요’, ‘사랑하기 좋은 날’, ‘순애보’ 등 관객이 잘 아는 노래와 즐거운 노래를 알차게 구성했다”고 귀띔했다.

유리상자 [마포문화재단 제공]

서로 다른 개성의 두 사람이 만나 27년을 함께 한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유리상자는 명실상부 국내 최장수 듀엣이다. 두 사람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오랜 시간 동안 특별한 불화도 슬럼프도 없었다”고 했다.

“그동안 서로에게 말할 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 그랬다면 지금도 말하면 안되겠죠. 그러니 (유리상자에게)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그 무언가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청춘의 시간만큼 살아낸 스물일곱 유리상자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족만큼 가까운 인연이 됐다. 박승화는 “유리상자는 가족 다음 가는 커다란 축복이고 울타리”라고 했고, 이세준은 “승화 형은 피 안 섞인 가족”이라고 했다.

“(유리상자의) 장수 비결은 적당한 무관심이에요. 이건 모든 인간관계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서로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여겨요. 듀오는 외롭지 않다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더 즐겁고 덜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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