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의 국내 초연 ‘한여름 밤의 꿈’ 프로덕션 미팅에서 ‘퍽’ 역을 맡은 가수 김동완 [연합]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최장수 아이돌 그룹 신화 출신의 가수 겸 배우 김동완이 오페라에 처음 도전한다.
김동완은 1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립오페라단 ‘한여름 밤의 꿈’ 프로덕션 미팅을 통해 “엉망진창이고, 혼돈에 빠져있는 모자란 캐릭터는 내가 전문”이라며 “적절한 캐스팅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1960년 초연한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의 ‘한여름 밤의 꿈’은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을 무대에 올린 현대 영어 오페라다. ‘요정의 왕’ 오베른과 그의 아내 티타니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눈을 뜬 직후 처음 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마법이 깃든 ‘사랑꽃’으로 인해 벌어지든 좌충우돌 소동극이다.
김동완이 맡은 퍽은 사랑꽃을 배달하는 요정이다. 극에 경쾌함과 생기를 불어넣는 장난스러운 캐릭터. 국립오페라단 작품에서 만나는 흔치 않은 ‘연예인 캐스팅’이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은 “퍽 역할은 잘 알려진 유명인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기획 단계부터 해왔다”며 “사실 처음엔 (방탄소년단) RM을 생각했다. 영국식 영어도 해야 하는 작품인데, RM 수준으로 영어를 해야하지 않을까 했다”면서도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김동완 씨를 강력하게 추천받았고, 그를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
김동완은 “고민 끝에 RM 대신 저를 택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연습 과정에서 혼자 튀어나오면 안되고,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면 안되는데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 오페라를 관람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클래식은 잠이 잘 오도록 듣기도 하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음악이라 걱정을 많이 했다”며 “그런데 연습해보니 변칙적이고 지루할 틈이 없는 음악이다. 음악 속에서 대사를 가지고 놀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도록 준비하겠다”고 포부를 다졌다.
‘한여름 밤의 꿈’이 세상에 나온 지 무려 60년 이상 국내 무대에 오르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최상호 단장을 비롯해 지휘를 맡은 펠릭스 크리거, 볼트강 네겔레 연출가는 모두 “감히 쉽게 공연하기 어려운 작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현대 음악은 어렵고 난해하다는 편견 때문이다.
펠릭스 크리거 지휘자는 “브리튼의 음악은 형형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곡들이다. 하지만 현대음악이라는 것에 겁을 먹거나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며 “바로크 음악이 생각날 정도로 과거의 요소와 현대음악에 필요한 요소가 공존하고, 멜로디도 무척 아름답다”고 했다.
그는 또 “긴 멜로디를 아리아로 부르지 않고 레치타티보(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의 창법)처럼 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귀띔했다.
브리튼은 셰익스피어의 텍스트의 내용을 음악으로 형상화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 “기존 이탈리아 오페라와는 달리 텍스트(희곡)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작품”이라는 것이 최 단장의 설명이다. 크리거 지휘자는 “브리튼은 셰익스피어가 텍스트를 생각해 한 땀 한 땀 촘촘히 곡을 썼다. 오페라에 나오는 모든 노래의 색깔이 다르고, 악기도 굉장히 다양하게 쓰며 아름답고 환상적”이라고 말했다.
지휘자 펠릭스 크리거 [연합] |
이 작품은 오페라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오페라에선 높은 음역을 내는 카운터테너(제임스 랭, 장정권)가 오베른 역할을 맡았다. 장정권은 “오페라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중요하고, 각자의 멜로디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며 “그 중 오베른은 시기와 질투를 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크리거 지휘자는 “각각의 인물에 맞는 적절한 특징을 찾아 지휘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보통의 오페라는 소프라노와 테너가 대비를 이루나 이 작품은 카운터테너와 소프라노의 대조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티타니아 역을 맡은 두 명의 소프라노는 이혜정과 이혜지다.
한 여름밤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 같은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요정 부부 오베른과 티타니아는 신화 속 존재가 아닌 우리 삶 어디에나 존재라는 부부의 모습을 그린다. 집안 곳곳을 아이들이 휘젓고 다니고, 그곳에서 오베른과 티타니아는 ‘칼로 물베기’식 부부 싸움을 벌인다.
연출을 맡은 볼프강 네겔레는 “마법처럼 모든 장면이 빨리 바뀌는 흥미로운 작품”이라며 “신적 존재를 벗어나 오베른과 티타니아를 오래된 부부의 모습으로 설정해 (우리 삶의) 작은 다툼과 사랑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