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 중인 자동차업 ‘상생협약’은 2·3차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근로 환경과 복리 후생에 집중돼 있다.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협력업체에 정부가 직접 ‘고용 보조금’을 지급하고, 원청은 협력업체가 비용 부담으로 회피하고 있는 근로자 휴게시설 비용 등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전환 과정에서 협력사들이 직면한 각종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정부와 원청이 함께 돕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1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20일 국내 최대 규모의 협력사 교육시설인 현대자동차 글로벌상생협력센터에서 ‘자동차산업 상생협력 확산을 위한 공동선언식’을 개최한 이후 자동차산업의 이중구조 개선방안을 논의하는 협의체를 운영해왔다. 협력사가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상생협약 과제가 발굴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을 협의체 위원장으로 노동연구원 출신 오진욱 전남대 교수, 현대차·기아 협력회장인 문성준 명화공업 대표, 이건국 삼보오토 대표, 이동석 현대차 대표(부사장), 최준영 기아 대표(부사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협의체가 지난 11월부터 지금까지 약 3개월 동안 집중한 것은 2·3차 협력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수요조사다. 현대·기아차 1차 협력사의 경우 만도처럼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인 경우도 있어 이번 상생협약의 주요 타깃은 영세한 2·3차 협력사지만, 이들 2·3차 협력사의 경우 현대·기아차와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어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박은정 고용부 이중구조개선과장은 “상대적으로 체계적으로 책정되고 있는 ‘단가’보다는 한 번도 건드린 적 없는 근로 환경, 복지, 안전, 교육·훈련 등에서 과제를 찾았다”고 말했다.
오진욱 교수는 “상생협약 이행 역시 조선업보다는 자동차업의 이행이 보다 수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업 상생협약은 원청이 하청업체에 ‘적정 기성금’을 지급토록 하고, 인건비를 떼이지 않는 ‘에스크로’를 도입해 저임금·고위험 일자리를 피해 조선업을 떠난 숙련공들을 다시 독(dock)으로 돌아오게 만든 것이 핵심이다. 전제가 ‘적정 기성금’인 만큼 노동계에서도 ‘원청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오 교수는 “자동차업 상생협약은 정부의 기존 사업 위주로 원청이 보조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만큼 이행에 어려움이 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 협약의 내용을 보면 고용부, 중소기업벤처부, 환경부 등 각 정부 부처가 이미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 대다수다. 예컨대 고용부는 현재 청년 취업을 돕기 위해 ▷일자리채움 청년지원금 ▷지역 맞춤형 일자리 사업 등을 진행 중인데, 이를 활용해 2·3차 협력사 채용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또, 중기부 역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에 직면한 중소기업을 위해 탄소배출량 산정·검증 등을 지원하는 ‘2024년 중소기업 CBAM대응 인프라 구축사업’을 진행 중인데 이 사업도 협약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원청의 선의’가 아닌 ‘정부의 재정사업’ 비중이 높다는 얘기다.
원청은 ▷휴게시설 설치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에 따른 안전체계 구축 등을 지원한다. 지난 2022년 8월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휴게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오 교수는 “최대 5300여개에 달하는 2·3차 하청업체 중 휴게시설 미설치 사업장 등이 얼마나 되는지 등이 관건”이라며 “관련 실태조사 등이 시간을 두고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사가 끝나야 현대·기아차의 지원 예산 규모도 윤곽이 나온다는 뜻이다. 또, 올해 1월 27일부터 중처법이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된 만큼 그에 들어가는 안전관리 체계 구축 등도 원청이 일정 부분 부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김용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