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미국, 일본 등 주요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미국 다우존스지수와 S&P500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각각 3만9000선과 5000선을 돌파했고, 지난달 말에는 나스닥지수도 2년 3개월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지난달 34년 만에 과거 ‘거품 경제’ 시기에 기록한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이달 초에 사상 최초로 ‘닛케이 4만’ 시대에 진입했다.
하지만 한국 증시는 맥을 못 추면서 코스피지수는 연초에 급격히 빠졌다가 최근 거의 회복했지만 아직도 사상 최고치(2021년 6월 25일, 3302.84) 대비 80% 수준에 머물고 있다. 특히 연초 코스피지수의 급락이 2년째 부진이 계속되는 중국 상해종합지수의 하락을 넘어서자 해묵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이슈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국 기업의 주가가 비슷한 수준의 외국 기업의 주가보다 지속적으로 낮게 평가되는 현상으로 실체가 모호하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지난 10년간 한국 증시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04배로 선진국 평균 2.5배보다 낮을 뿐 아니라 신흥국 평균 1.58배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의 20년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9.6로 세계 전체평균 12.2에 비해 상당히 낮아 한국 증시가 장기간 저평가 상태임을 보여준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증시 개장 첫날 한국거래소를 찾아 “자본시장 규제를 과감히 혁파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며 금융투자소득세의 폐지에 이어 관련 정책들을 잇따라 내놨다. 정부도 지난달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을 발표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시장은 실망하는 분위기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은 한국의 낮은 경제성장률과 저조한 기업실적이다. 한국은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1.4%를 기록했고 올해 성장률도 2% 안팎으로 전망되고 있어 저성장 늪에 빠져들고 있다. 특히 한국 경제 미래의 심각한 위협은 잠재성장률의 지속적 하락으로 성장 동력의 상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제가 성장해야 기업도 성장을 해서 실적이 좋아지고 투자가 이어져 밸류업을 할 수 있다.
둘째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반하는 기업규제와 조세제도다. 기업을 옥죄는 기업규제법, 노조의 힘만 키우는 노동 관련 법과 제도 등이 반기업·친노동 정서를 부추겨 기업들의 투자를 막고 있다. 특히 저성장 시기에는 국내 투자는 물론 외국인 투자도 급감하여 주가가 저평가되기 쉽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과 OECD 회원국 평균(28%)을 크게 웃도는 높은 배당소득세율(50%) 등도 증시 침체에 일조하고 있다.
셋째는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다. 일반 소액주주의 권리보다 지배주주 이익을 중시하는 상장사들의 행태에 주가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한국의 상장사 평균 배당성향은 26%로 신흥국 39.6%, 선진국 49.5% 대비 확연히 낮다. 미흡한 주주환원은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와 연관이 깊고, 오랜 주주 홀대에 배신감을 느낀 투자자들이 증시를 떠나고 있다.
넷째는 한국의 경제 구조와 지정학적 리스크다. 한국은 제조업 중심의 수출로 먹고사는 소규모 개방경제로 대외 의존도가 높아 증시가 다른 나라에 비해 외생 변수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남북 관계 악화로 확대되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글로벌 경기에 따라 출렁이는 기업실적은 대표적인 주가 할인 요인이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상장사가 스스로 자본 효율성을 개선하고 주주환원을 늘려 기업가치를 올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기업들의 주주가치 제고와 함께 상법 개정을 통한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 등 실질적인 지배구조의 선진화가 필요하다. 또한 주식 투자 관련 세제, 징벌적 상속·증여세 등을 개편해 장기투자를 유인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실제로 연초 정부가 주주친화적 정책을 내놓겠다고 밝힌 후 증시로 유입되는 외국인 투자금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PBR이 1배 미만인 저평가주를 중심으로 주가가 크게 뛰었다. 하지만 단기적·미시적 대안만으로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일본의 주가가 작년부터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기업가치 제고 방안 때문만이 아니라 엔저와 저금리에 따른 기업들의 실적 호조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저평가된 한국의 주가를 적정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서는 잠재성장률의 추락을 반전시키는 거시경제 성과와 함께 기업실적이 뒷받침돼야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주가의 지속적인 동력은 결국 성장성이므로 과감한 구조개혁으로 기업의 펀더멘털을 강화해야 한다.
기업을 옥죄고 투자를 저해하는 각종 ‘킬러 규제’를 혁파하는 규제개혁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과감한 노동개혁으로 기업가의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이 살아나게 해야 한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 신성장동력 육성 등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미래 성장을 주도해야 한다.
기업들의 지속성장 가능성이 보여야 장기투자로 증시가 살아나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강명헌 단국대 명예교수 전 금융통화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