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현미경으로 고유번호·바느질까지” 중고 명품도 명품시대 [명품 지각변동]

감정이 끝난 샤넬 백 위에 감정 상태를 확인하는 증명서가 놓여있다. 정석준 기자

[헤럴드경제=정석준·김벼리 기자] “각 브랜드마다 고유 폰트와 각인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감정해서 가품을 걸러냅니다.”

지난 13일 찾은 서울 금천구 트렌비 한국정품감정센터. 330m²(100평)의 공간에서 10여 명의 감정사들이 제품을 살피며 정품 여부를 확인한다. 감정사의 손에는 현미경과 돋보기, 줄자가 들려 있다. 6년차 감정사 리오(닉네임) 씨가 샤넬백에 현미경을 넣는다. 정품 코드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육안으로는 정품 유무를 알 수 없다. 현미경은 모래 속에서 진주를 찾듯 코드 위치를 찾았다. 모니터에는 샤넬 마크와 고유넘버인 ‘3483’이 표시됐다.

리오 씨는 “제품마다 고유 넘버를 찍어서 생산하는데, 이 부분이 중요해 가장 심혈을 기울인다”며 “세밀한 부분은 현미경으로 보고,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금속이나 마감은 돋보기로 확인한다”고 말했다.

초소형 카메라로 확인한 샤넬 고유 번호. 정석준 기자

중고 명품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리서치앤마켓의 연구에 따르면 글로벌 중고 명품 시장 규모는 2021년 약 39조원에서 2025년 약 56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중고 명품업체 구구스의 거래액은 2021년 1545억원에서 지난해 2153억원으로 증가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경기 불황과 비대면으로 늘어난 명품이 엔데믹 이후 시장에 다시 나오고 있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경기 불황으로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면서 싼 가격에 명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찾은 센터에는 감정을 기다리는 제품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센터에 입고된 제품은 가품 여부와 제품의 상태, 등급 책정, 감정사 게런티 카드 작성, 사진 촬영 등 여러 절차를 거쳐 재판매된다. 이날 리오 씨가 확인한 샤넬 코드 3483 가방은 정품으로 판명돼 A+등급을 받았다. 트렌비는 제품의 전반적인 위생 상태, 훼손 정도를 보고 S+부터 B까지 7개 등급으로 제품을 분류하고 있다.

고객이 요청하거나 가품으로 판정돼 반환을 기다리는 제품들. 정석준 기자

감정을 통과하지 못한 상품은 ‘불합격’으로 분류돼 별도 공간에 놓인다. 이 제품들은 결국 의뢰한 고객에게 돌아간다. 이 대표는 “가품인 것을 알면서 판매하는 분들이 없어지고, 대부분 선물로 받거나 정식 매장에서 구매하지 않아 가품인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가품 비율도 유행에 따라 또 브랜드마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정품 판정을 받고 등급이 매겨진 제품은 스튜디오로 옮겨진다. 온라인을 통한 재판매를 위해서다. 스튜디오에는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인력이 있다. 기자가 찾은 스튜디오에는 쉴 새 없이 플래시가 터졌다. 직원은 마네킹에 구찌 가방을 착용시키고 사진을 찍었다. 다른 직원은 소비자가 제품의 크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스마트폰과 제품을 같이 놓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중고 명품 물류는 일반 물류와 다르다. 보관과 배송에 공이 들어가서다. 체온에도 제품이 손상될 수 있다. 감정사들이 장갑을 착용하는 이유다. 이종현 트렌비 대표는 “가죽 상품은 채광이나 습도에 따라 손상될 수도 있다”며 “계절에 맞게 온도를 관리하고 제품 위에 물건을 쌓지 않도록 보관대 역시 적정한 높이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가격 책정도 중요하다. 제품 판매 과정에서 고객의 항의가 들어오기도 한다. 이 대표는 “제품을 내놓은 사람의 불만 중 하나가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가격이 너무 낮다는 것”이라며 “인건비 등을 고려해 가격을 책정하지만, 판매자의 기대에 미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서울 금천구 한국정품감정센터에서 트렌비 직원이 제품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정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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