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집단행동 한달]‘당근’과 ‘채찍’ 들었지만 의정 갈등만 증폭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

[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지난달 19일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전공들이 무더기로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촉발된 의사 집단행동이 한달째를 맞은 가운데,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 국면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그간 의료계가 요구해 온 필수의료 정상화 방안을 추진하는 한편, 집단행동에 대한 ‘원칙 대응’ 입장을 유지해 왔다. 오는 25일 의대 교수들까지 집단행동을 예고함에 따라 의료 공백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의 입장 변화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이번 전공의 집단 사직은 정부가 2006년 이후 18년 만에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면서 촉발됐다. 지난달 6일 정부는 10년간 1만5000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보고, 2025학년도 의대 입학정원을 2000명 증원한다고 발표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자 정부는 의사들의 단체행동 움직임에 “불법적인 집단행동은 의료법과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경고를 거듭 보냈다.

지난달 19일 세브란스병원 전공의를 시작으로 빅5 전공의들이 사직서 제출에 나섰고, 전공의 사직은 전국으로 번졌다. 정부는 사직서를 제출했거나 병원에 출근한 전공의들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렸지만, 복귀한 전공의는 소수에 그쳤다.

전공의 현장 이탈은 의대생의 휴학과 의대 교수들의 움직임도 촉발해 서울대 의대를 포함해서 대학 20곳 교수들은 오는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정부도 이에 물러서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를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로 격상하고, 의료계 집단 행동 시 즉각 업무 복귀 명령을 내리고 따르지 않으면 징계 등의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근무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 5556명에게 의사 면허 정지 사전 통지서를 발송했다.

의협과 전·현직 관계자들을 대상으로는 경찰 수사도 이뤄지고 있다.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 등은 전·현직 간부 5명이 전공의 집단사직을 조장해 업무방해를 교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의사 총궐기대회 이틀 전인 지난 1일에는 의협과 이들 전·현직 간부들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지기도 했다.

정부가 의료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의대 정원 사안이 필수의료 정상화라는 당초의 취지를 압도해 버리면서 갈등만 고조되는 상황이다. 현 상황은 의정 양 측의 ‘치킨 게임’으로 흐르는 형국이다. 어느 일방이 물러서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상황에 직면했다.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은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 움직임에 대해 “교수님들도 전공의들과 뜻이 같을 것”이라며 “교수 집단사직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정부가 전향적이고 유연한 자세로 정책을 결정하고 논의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정부가 정원 문제를 두고 특정 직역과 협상하는 사례는 없다. 변호사도, 회계사도, 약사도, 간호사도 마찬가지”라며 “협상하지 않으면, 환자의 생명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식의 제안에는 더더욱 응할 수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일어난 갈등을 조정하고, 전공의는 의료 현장에 복귀한 뒤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부가 ‘의대 증원 2000명’ 고수와 근무지 이탈 전공의 처벌에 대한 ‘원칙 대응’을 놓고 향후 고심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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