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이후 잠잠했던 ‘윤-한 갈등’에 또 다시 불이 붙었다. 국민의힘 비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공천 결과, 당선권에 친한동훈계 인사들이 배치된 것을 놓고 친윤석열계 핵심 인사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조금씩 누적됐던 불만이 일명 ‘이종섭·황상무 논란’ 등을 거쳐 비례 순번 신경전에서 터져나왔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인 장동혁 사무총장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비례 공천 발표 후 윤한 갈등이 다시 불거졌단 평가가 있다’는 지적에 “특정인사의 의견이 반영 안 됐다고 해서 그걸 친한(친한동훈계) 인사로 공천했다고 표현하는 건 개인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2022년 재·보궐선거로 당선된 장 사무총장은 ‘0.5선’임에도 불구, 한동훈 비대위에서 이례적으로 사무총장으로 중용돼 친한 인사란 평가를 받는다. 장 사무총장은 “공천 과정에서 다른 의견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며 “그런데 저희가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선 그런 문제들을 당 내에서 어떻게 표출하고,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되는지에 대해 좀 더 다른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장 사무총장의 발언은 전날 비례대표 공천 결과를 비판한 이철규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의원은 전날 비례 공천 발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례대표를 연속으로 두 번 배려하지 않는다는 당의 오랜 관례는 깨어지고, 그동안 당을 위해 헌신해 온 사무처 당직자는 당선권에 한명도 포함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비대위원 2명이 비례대표에 포함되고, 생소한 이름의 공직자 출신 2명이 당선권에 포함된 상황에서 온갖 궂은일을 감당해 온 당직자들이 배려되지 못한 데 대한 실망감은 더더욱 크다”며 “당 지도부는 후보 등록일 전까지 바로잡길 바란다”고 했다.
이는 비례대표 명단 당선권인 2~7번에 영입인재들이 포함된 데 이어, 한지아(11번)·김예지(15번) 비대위원이 들어간 것을 지적한 것이다. 김 의원은 21대 총선 비례로 국회에 입성한 인물로, 비례 재선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반면 호남 출신 인사 중 당선권에 배치된 인사는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8번)이 유일하다. 김화진 전 전남도당위원장(22번)과 함께 호남 몫으로 명단에 오른 주기환 전 광주시당 위원장(24번)은 전날 ‘호남 홀대’를 공개 비판하며 비례 후보를 사퇴했다. 이를 놓고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한동훈 특혜로 비춰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한 지도부 인사는 “정치 초보인 한 위원장이 비례 순번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당 내에서는 이번 갈등을 지난 1월에 이은 ‘2차 윤한 갈등’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거취 문제를 둘러싼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의 신경전이 비례 순번을 놓고 기어이 표출됐다는 것이다.
한 위원장은 지난 17일 “공수처가 (이 전 장관을) 즉각 소환하고, 이 대사는 즉각 귀국해야 한다”고 말한 데 이어, 전날 중앙선대위에서도 같은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은 전날 입장문을 통해 “공수처가 소환도 안한 상태에서 재외공관장이 국내에 들어와 마냥 대기하는 건 매우 부적절하다”며 사실상 반박했다. 한 위원장은 ‘언론인 회칼 발언’으로 논란이 된 황 수석의 자진사퇴도 압박하고 있다. 반면 대통령실은 자진 사퇴 가능성을 다룬 언론 보도에 대해 전날 “사실과 다르다”고 일축했다.
당 내에서는 갈등 구도 확산을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지도부의 한 의원은 “비례대표 명단은 통상 당대표 등의 몫이 작용하는 게 관례이고, 과거 정치권에서 김종인·김한길 등 비례 다선 전례가 없던 것도 아니다”라며 “내부 갈등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공천 명단을 두고선 윤한 갈등과 무관하게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 사무총장도 이날 “호남 인사들이 전진 배치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지적이 있는 걸로 안다”며 “후순위에 있는 분들 중 고려할 부분이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일부 후보들을 두고선 “과거 보수정부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도 나온다. 강세원 전 대통령실 법률비서관 행정관(13번)은 이명박 정부 초기 청와대 법률비서관을 지낸 강훈 법무법인 바른 공동창업주의 딸이고, 안상훈 전 대통령실 사회수석(16번)은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김기춘 전 실장의 사위다. 이시우 전 국무총리비서실 공보실 서기관(17번)은 지난해 ‘골프 접대’를 받고 징계받은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박상현·신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