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선거판 장악한 ‘올드보이들’…새 인물 없다

17일(현지시간)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러시아 대통령 선거 마지막 날 투표소가 문을 닫은 후 한 선거관리위원회 위원들이 개표를 위해 투표함을 비우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슈퍼 선거의 해’ 답게 올해 전세계 곳곳에서 선거가 치뤄지고 있지만 새로운 인물은 없고 기존 정치인 일색이다. 연임 사례가 늘면서 유력 당선자나 후보자들의 연령도 70대 이상으로 올라가고 있다. 몇몇 국가의 권위주의 통치 상황과 함께 저출산으로 유권자 연령이 올라간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선거를 치른 러시아, 방글라데시를 비롯해 내달 선거를 치르는 인도까지 70대 고령의 현직 지도자들의 연임이 유력하다. 이들은 권위주의 통치를 이어가며 국민들의 막강한 지지를 얻고 있다.

4연임·5연임에…70대 노익장된 당선인
대선 승리로 5연속 집권에 성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모스크바의 선거 캠페인 본부에서 기자들을 만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15∼17일 진행된 대선에서 90%에 가까운 득표로 5선을 확정했다. [연합]

71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5연임에 성공하면서 ‘종신집권’에 한발짝 다가갔다. 오는 2030년까지 임기가 보장된 푸틴 대통령은 77세까지 러시아를 집권하게 된다.

18일(현지시간) 러시아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러시아 대선 개표가 99.76% 진행된 상태에서 푸틴 대통령이 87.29%의 득표율로 기록했다고 밝혔다. 투표율은 90%에 육박해 러시아 대선 역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불구하고 2년간 러시아 경제를 성장으로 이끌고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잡으면서 러시아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올해 초 치뤄진 방글라데시 총선에서는 ‘아시아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4연임에 성공했다. 올해로 76세인 하시나는 1996년 첫 집권에 성공한 뒤 2009년부터 세차례 연임 후 2029년까지 방글라데시를 집권하게 됐다. 하시나 총리는 초대 대통령 셰이크 무지부르 라만의 딸로, 방글라데시를 빈민국에서 탈출시켰다는 평가를 받지만 민주주의를 탄압했다는 비판도 동시에 받는 인물이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자와할랄 네루 초대 인도 총리 이후 처음으로 3연임에 도전한다. 73세의 모디 총리는 10억명에 육박하는 유권자들에게 70%대의 높은 지지율을 받고 있다. 이번 총선은 이변이 없는 한 집권당인 인도국민당(BJP)이 승리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바이든 VS 트럼프…누가 돼도 ‘최고령 대통령’
지난 16일 인도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임기 5년의 연방 하원의원 543명을 선출하는 총선을 오는 4월19일 개시한다고 밝혔다. [AFP]
지난 2월 인도네시아 대선 임시 결과에서 당선이 확실시된 프라보워 수비안토(왼쪽)과 부통령 후보인 조코위도도 대통령의 장남 기브란 라카부밍 [AFP

선거로 당선된 새 인물이 사실상 전임 통지자의 연장선인 사례도 있다. 지난 2월 인도네시아 대선 임시 결과에서 당선이 확실시된 72세 프라보워 수비안토는 퇴임을 앞둔 조코 위도도 ‘대통령 3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조코위 대통령의 장남 기브란 라카부밍이 부통령 후보로 그와 함께 뛰었고, 프라보워 후보는 “조코위표 정책을 이어받겠다”는 구호로 당선됐다. 조코위 대통령은 3선 제한에 걸려 출마하지 못했으나 임기 말 지지율이 80%에 육박할 정도로 방글라데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오는 11월 열리는 미국 대선은 누가 당선돼도 ‘역대 최고령 미국 대통령’이 된다.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면 82세에 새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바이든은 78세였던 2021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역대 최고령 미국 대통령이 됐는데, 재선에 성공하면 본인의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당시와 마찬가지로 78세에 대통령직을 시작하게 된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보다 생일이 빨라 취임 시 나이가 약 5개월 더 많게 된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나이가 가장 많았던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이 69세로, 두 후보와 10살 가까이 차이가 난다.

지구촌 연령 올라가니…지도자도 늙는다
미국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로이터, AFP]

‘올드보이 지도자’가 나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독재 정권으로 선거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일부 국가에서 연임 사례가 늘면서 자연스레 지도자 나이가 드는 경우가 있다. 러시아가 대표적이다. 푸틴 대통령이 당선되자 서방은 러시아 선거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않는다며 비판했다. 비밀투표를 보장할 수 없는 투명한 투표함이 쓰였고, 우크라이나 내 4개 점령지에서도 투표가 시행됐다는 점에서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푸틴이 정적들을 투옥하고 다른 이들이 자신에게 맞서 출마하지 못하게 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이 선거는 명백히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고 몰아세우기도 했다.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유권자 나이가 올라가는 것도 지도자 나이에 영향을 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저출산 현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이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고령의 유권자들이 새 정치인보다 자신과 비슷한 연령의 지도자를 뽑는다는 것이다. 미국 ABC뉴스도 지난해 보도에서 고령의 후보들이 선택 받는 이유 중 하나로 미국의 인구 구조를 꼽고, “1980년대 이후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 유권자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유권자가 많다”고 했다.

고령의 당선인이 특정 세대의 수요만 대표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ABC 뉴스는 “고령층의 후보자들이 헬스케어 등 고령층의 관심사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학자금 대출, 기후위기 등 젊은층이 관심이 많은 이슈에 소홀히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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