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홈캠 설치해 남편 대화 엿들은 아내…대법, 무죄 확정

[연합]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거실에 홈캠을 설치해 배우자의 대화를 녹음한 아내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무죄가 확정됐다. 홈캠을 설치할 때 남편의 동의를 받은 점, 실시간으로 대화를 엿들은 게 아닌 이상 타인의 대화를 청취했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이 고려됐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권영준)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를 받은 아내 A씨에 대한 사건에서 이같이 판시했다.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한 원심(2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봤다.

A씨는 2020년 2월, 본인의 아파트 거실에 홈캠을 설치했다. 움직임이 감지되는 경우 자동 녹음되는 기능이 있는 홈캠이었다. 홈캠을 설치하는 것엔 남편도 동의했다. 하지만 A씨는 남편과 남편의 부모, 동생이 대화하는 내용까지 녹음하고, 청취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어떤 대화 내용이 녹음됐는지, A씨가 어떤 의도로 홈캠을 설치한 것인지 등은 판결문에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이 무렵 A씨와 남편은 외박, 유흥 등의 문제로 관계가 나빠졌고, 결국 남편이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누구든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녹음된 대화를 청취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긴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1심과 2심은 A씨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을 맡은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 1형사부(부장 주은영)는 2022년 12월, 이같이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남편의 동의를 받아 녹음기능이 있는 홈캠을 설치했고, 대화가 자동으로 녹음된 사정을 고려했을 때 A씨가 고의로 타인 간 대화내용을 녹음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2심의 판단도 같았다. 2심을 맡은 대구고등법원 2형사부(부장 정승규)는 1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봤다.

대법원 역시 2심 판결에 대해 수긍했다. 대법원은 “통신비밀보호법상 ‘청취’는 타인 간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엿듣는 행위를 의미한다”며 “대화가 이미 종료된 상태에서 그 대화의 녹음물을 재생해 듣는 행위는 청취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어 “종료된 대화의 녹음물을 재생해 듣는 행위도 청취에 포함하는 것은 불필요하거나, 청취의 범위를 너무 넓혀 금지 및 처벌 대상을 과도하게 확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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