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의료원 종합관에서 전날 열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와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 간담회에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
정부가 24일 전공의의 임박한 면허정지 처분을 앞두고 한 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간 의·정갈등으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어온 환자들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 “정부가 먼저 손 내밀면 못이기는 척 돌아와야 되지 않나”라는 반응을 내보이고 있다. 다만 협의의 주체가 교수단체라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다른 전공의의 복귀로 실제 이어질 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전공의들의 임박한 면허정지 처분과 관련, “당과 협의해 유연한 처리 방안을 모색해달라. 의료인과 건설적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를 추진해달라”고 지시한 다음날인 25일 서울성모병원에서 만난 60대 김모 씨는 “정부가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전공의들이)못이기는 척 돌아오면 좋겠다”며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환자들 다 죽게 내버려두고 사직서를 내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밝혔다.
정부가 먼저 손 내밀었다는 사실은 환자들로부터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신촌세브란스병원에 항암치료를 받으러 아침 일찍부터 내원한 폐암 환자 정모 씨도 “정부가 먼저 나서줘야지 싶었다. 누구 하나라도 먼저 손을 내밀어야 다른 하나가 잡든 말든 하니 그런 점에선 좋은 신호”라며 “의료공백 사태가 길어져서 좋을 건 정부도, 의사도, 환자도 없다”고 말했다.
중증 환자들의 기대감은 더욱 간절한 모습이다. 서울성모병원에서 뇌종양으로 투병중인 아버지를 간병하는 이미숙(47)씨는 “아버지 수술 일정이 아직은 그대로 진행된다고 하는데 오늘부터 교수들이 사직하게 되면 취소될까 매우 불안하다”며 “정부든, 의사든 제발 빨리 합의를 봐서 이 불안감을 해소시켜달라”고 호소했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도 “어떤 대화 창구를 마련해서 대안을 한 번 찾아보겠다는 것은 늦은 감은 잊지만 찬성할 일이고 상당히 고무적인 것”이라며 반겼다.
다만 교수들이 정부와 대화로 합의점을 찾은들 정작 인력부족의 당사자인 전공의들이 순순히 병원으로 돌아오겠느냐는 의문이 남았다.
고열이 끓는 아이를 데리고 아침 일찍 서울성모병원 소아과를 찾은 박모 씨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등판해 교수들과 협상 시도했다고 전공의들이 돌아오겠느냐. 그럴 거였으면 이미 진작 해결될 문제였을텐데 전공의들 강경해서 별 효과 없을 것 같다”고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했다.
김 대표 역시 “지금 전공의들이 보이는 자세는 교수들하고 정부가 나선다고 해서 이런 사태가 끝날 정도로 간단한 문제 같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혹시나 아무 소득 없이 끝나버리면 환자들에게 더 큰 희망고문이 될 수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걱정을 지우지 못하겠다”고 밝혔다.
직장인 온라인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도 현재 돌아가는 정국에 대해 “교수들이 정부랑 협의한다고 MZ세대 전공의들이 복귀할까? 최저 시급 80시간 이상 일하면서 노예처럼 일하고, 미래 수입원도 악화될텐데 안 올 것 같다” 등의 비관적 의견이 다수 관측됐다
전날 윤석열 대통령은 전의교협과 만난 한 위원장의 중재를 받아들여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을 재고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26일부터로 예상됐던 면허정지 처분이 일단 유예될 가능성이 높다. 이달 초 가장 먼저 면허정지 사전통지서를 받은 전공의들의 의견 제출 기한은 25일까지로, 끝내 의견을 안내면 원칙상 26일부터 바로 면허를 정지할 수 있다.
전의교협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한 위원장과의 간담회에서 전공의에 대한 처벌은 의과대학 교수의 사직을 촉발할 것이며,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전달했다”면서 “또한 교수들의 자발적 사직과, 누적된 피로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주 52시간 근무, 중환자 및 응급환자 진료를 위한 외래진료 축소는 금일부터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 교수는 환자를 위해 사직할 수 없다는 소신을 드러내고 있다. 이날 의료계에 따르면 이미정 충남 천안 단국대병원 소아청소년과장은 최근 의료 전문매체인 ‘청년의사’에 기고한 ‘사직을 망설이는 L 교수의 답장’이라는 글에서 돌보던 환자는 물론 환자들을 맡기고 간 전공의들을 위해서라도 교수들은 현장에 남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글에서 “아픈 환자를 버려두고 병원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국민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지는 것”이라며 “게다가 더 나쁜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도 지게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지난 20일 단국대 의대 교수 회의에서 사직서 제출을 논의할 당시 ‘항암 치료 중인 소아암 환자들이 있다’며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민경·김용재·안효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