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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의료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13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 앞 복도에 보건복지부 장관 명의의 업무개시 명령서가 붙어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이용경 기자]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강제노동 금지 위반을 주장하며 국제노동기구(ILO)에 긴급 개입(Intervention)을 요청했지만, ILO로부터 ‘요청 자격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대전협 측이 ILO의 개입을 다시 요청한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선 대전협이 노동자 단체성을 상당 부분 입증했다면 ILO가 실질 판단에 나설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전협 측은 지난 13일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ILO 제29호 강제노동 협약 위반이라며 ILO의 긴급 개입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틀 뒤 ILO는 수신인을 박단 대전협 회장으로 지정하고 대전협 측에 “개입 요청 자격이 없다”고 회신했다. ILO 측은 일부 개인이나 단체에 대해선 의견조회 절차를 진행하지 않으며, 오직 정부나 노사단체에 대해서만 관련 절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전협 측은 그동안의 활동 자료를 최대한 수집하고 대전협이 전공의들을 대표하는 단체라는 설명을 보완해 ILO의 개입을 다시 요청했다.
대전협의 ILO 개입 요청을 대리하고 있는 조원익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25일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당초 개입을 요청할 때 대전협과 박단, 그 외 전공의들 수를 함께 기재했었다”며 “ILO 측이 이것을 일부 개인이 보낸 것으로 오해를 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ILO가 전공의협의회에 대해 정확히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까지 활동 상황 등에 관한 상세 내용을 보충해 재요청서를 보냈다”며 “정부의 발표대로 절차가 종결된 게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21일 “ILO 사무국은 대전협이 의견조회 요청 자격 자체가 없음을 통보하고 종결 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어 “ILO 사무국은 노사 단체의 의견조회 요청이 접수되면 통상 수 일 내에 해당국 정부에 접수 사실을 통보하고 정부의 의견을 요청한다”며 “하지만 ILO 사무국에선 관련 통보가 없었고, ILO 사무국에 문의한 결과 이 같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ILO 사무국에 따르면 의견조회 요청 자격은 ILO의 노사정 구성원인 정부 또는 국내외 대표적인 노사단체로, 대전협은 의견조회 요청 자격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부연했다.
조 변호사는 “절차가 끝난 게 아닌데, 정부에선 ‘종결됐다’고 발표해 당황스러웠다”며 “일련의 상황을 정리해 ILO 측에 보냈고, 재요청 건에 대해선 가능한 한 조속히 회신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노동계 전문가들은 대전협 측이 노동자단체임을 적극적으로 입증했다면, ILO도 실질적 판단에 나설 거라고 분석했다.
노동법학계의 한 원로 교수는 “대전협의 노동단체성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논란과는 별도로 강제노동 위반 문제는 당사자 적격보다 실제로 강제노동인지 여부가 중요하기 때문에 ILO가 판단에 나설 수 있다”며 “대전협이 국내법상 신고된 정식 노조가 아니더라도 단체성이 인정되면, 형식적 판단보다도 실질적 판단을 할 거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노동법 전문인 이정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대전협 측에서 전공의들이 그간 실질적인 근로를 제공해 왔다는 부분과 대표성 있는 단체의 특성 등을 충분히 설명하며 개입을 재요청한 것이라면 ILO 입장에서도 분명 메시지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