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2일 인도 델리 시내 곳곳에 주황색 깃발이 나부꼈다. 복잡하게 얽힌 릭샤(인력거)와 택시, 자전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힌두교 신이 그려진 주황색 깃발을 꽂고 도심을 질주했다. 관공서와 기업들은 오후부터 영업을 중단하고, 주식 시장도 문을 닫았다. 10만명 이상이 TV 앞에 모이고, 인도 북부의 작은 도시에 80편의 전세기가 착륙했다고 한다. 이유는 뭘까.
이날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州)에 위치한 아요디아에 힌두교 사원이 개관했다. 인도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 사원이다. 하지만 아요디아는 힌두교 대서사시 ‘라마야나’의 주인공이자 영웅인 ‘라마신’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상징성이 남다르다.
아요디아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곳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후(허황옥)가 배를 타고 4500㎞를 건너와 김수로왕과 혼인했다고 전해진다. 2001년 우타르프라데시주 정부와 김해시는 아요디아에 허황후 기념공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20세기 아요디아는 인도 역사상 최악의 힌두-이슬람 종교 분쟁이 발생한 지역이기도 하다.
1992년까지 아요디아에는 무굴제국 첫번째 황제가 설립한 이슬람 모스크가 있었는데, 이곳을 힌두교 신의 탄생지로 믿고 있는 힌두교도들이 모스크를 파괴했다. 그 여파가 인도 전역의 종교 분쟁으로 이어지며 이슬람교도 2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10년이 넘는 분쟁 끝에 2019년 인도 대법원이 힌두교의 손을 들어주며 아요디아 사원 설립으로 이어졌다. 국가 인구의 80%가 힌두교인 인도 전역이 이번 개관식을 환영하는 축제 분위기일 수 밖에 없다.
복잡한 역사를 가진 아요디아는 2024년에도 여러 의미로 해석된다. 인도는 오는 4월로 총선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와 관련 외신을 중심으로 “현 모디 총리가 연임을 위해 완공까지 1년 가까이 남은 사원의 개관식을 강행하면서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모디 총리는 개관식에 참석한 8000여명의 환호 아래 “정의가 실현되었고, 기다리던 영광의 시대가 열렸다”라고 말했다. 인도는 헌법상 세속주의 국가이지만, 힌두 민족주의를 내세워 온 모디 총리가 절대다수의 표심을 위해 아요디아를 정치 심볼화하고 있다는 목소리다. 인도 시내 곳곳에는 라마신과 모디 총리의 선거 홍보용 입간판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처럼 부정적인 일부 견해에도 불구하고, 모디 총리가 쉽게 연임에 성공할 것이라는 의견이 다분하다. 모디노믹스를 기반으로 민간투자 주도의 친기업 정책을 전개해 온 만큼 연임 이후의 기조도 유사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과 인도가 맺은 CEPA(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의 낮은 양허 수준과 인도 정부의 잦은 무역구제 시행, 행정절차의 비효율 등 여전히 국내 기업들의 인도 진출이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인도는 연 7% 이상의 꾸준한 성장률을 보이며 경제대국화를 단언하고 있다.
또한 특정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양국 간 협력 다각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우리 기업도 인도 총선 이후 변화 혹은 유지되는 기조에 발맞춰 적극적인 진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종원 코트라 뉴델리무역관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