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동의 간음죄, 묵시적 합의하에 이루어진 것도 추후 변심해 “동의한 적 없다”고 하면 처벌? ‘과잉 범죄화’ 등 심각한 부작용 우려

법원 마크.

[헤럴드경제(부산)=임순택 기자]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비동의 간음죄’ 도입 여부를 두고 찬반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를 적용할 경우 성범죄 처벌 가능성이 무한정 확대되는 등 심각한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정계는 물론 법조계 안팎으로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실제로 성범죄 사건 대부분이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점과 비동의 간음죄가 도입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충격적인 성범죄 무고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정략적 접근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이 4·10 총선 공약으로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포함시켰다가 27일 오후 “실무적 착오로 당론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은 26일까지만 해도 비동의 간음죄 도입은 ‘삶의 질 수직 상승을 위한 민주당의 약속’이라 제목으로 민주당 총선 정책 공약집에 담았었다.

비동의 간음죄는 강간의 기준을 완화하는 것이다. 현행 형법 297조는 강간을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한 성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비동의 간음죄는 상대방의 동의 없이 성적 침해가 발생하면 강간죄로 처벌하자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강간의 구성요건인 ‘폭행 또는 협박’을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는 최협의설이 오히려 최근에는 폭행과 협박의 범위를 너무 넓혀 사실상 동의에 준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대방의 동의 없이 성적 침해가 발생하면 이를 강간으로 인정하는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이에 반해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27일 개혁신당 천하람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비동의 간음죄’ 입법 공약과 관련, “모든 성관계를 국가 형벌권이 강간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변호사인 천 위원장은 “수많은 국민이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성범죄로 수사 받고 인생이 송두리째 위협받는 심각한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25일 울산을 방문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당의 비동의 간음제 도입 추진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이날 오후 한 위원장은 울산 남구 신정시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비동의 간음죄가 도입되면 입증 책임이 검사가 아닌 혐의자에게 있게 된다”며 “억울한 사람이 양산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이어서 지금 대법원 판례의 취지가 강간죄에 있어서 폭행, 협박의 범위를 대단히 넓혀가고 있는 추세인 점과 이에 사실상 동의에 준하게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비동의 간음죄 도입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봤다.

이에 앞서 2018년 8월 국회 입법조사처도 당시 정의당 소속으로 활동해오던 류호정 의원이 발의한 ‘비동의 강간죄’ 법안(성범죄 처벌 강화를 위한 형법 개정안)에 대해 “비동의 간음죄가 강간죄 처벌 가능성을 무한정 확대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현재 지지율 고공행진 중인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도 과거 과잉 범죄화 폐해 등을 우려하며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정면으로 반박한바 있다.

조국 대표가 민정수석비서관 시절인 2003년 출간한 ‘형사법의 성편향 전면 개정판’(박영사)을 2018년 새로 출간하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당시 조 대표는 비동의 간음죄의 성립은 여성의 동의 여부가 관건인데 동의 여부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다는 점과 동의 여부가 “묵시적 동의나 조건부 동의 등 ‘동의와 거절 사이의 회색지대’ 존재,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처벌이 좌우되는 불합리성 등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당시 언론을 통해 “남성에게 성교 추구 전 상대방의 명시적, 확정적 동의를 증거로 확보하라고 요구하는 셈이다”며 “성교가 범죄로 처벌되는 과잉범죄화 폐해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반대했다.

익명을 요구하는 한 변호사는 “요즘 성범죄 무고나 이것이 의심되는 애매한 성범죄 사건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비동의 간음죄까지 도입하면서 남녀가 묵시적 동의하에 성교를 했다고 하더라도 추후에 여성이 변심하거나 직접적으로 동의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모두 처벌해야 하냐”고 반문한 뒤 “이는 남성에게 성교하기 전에 반드시 동의를 증거로 확보하라는 말 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이것이 도입되면 성범죄 무고로 악용되는 사례도 적지 않을 것이고, 성관계 자체가 범죄로 처벌되는 과잉 범죄화 현상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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