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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마크. |
[헤럴드경제(부산)=임순택 기자] 성범죄 무고 사건이 날로 교묘해지고 대담해지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는 과도한 ‘성인지 감수성’에 기반한 무리한 수사기관의 관행과 사법부의 태도에 있다는 책임론이 법조계 안팎으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일부 언론과 여성단체가 ‘성범죄 무고나 무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유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프레임에 맞춘 무책임한 보도와 주장도 한몫 거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광주지법 제3형사부(김성흠 부장판사)는 지적장애인 직원에 수억원의 빚을 떠넘기고, 이를 덮기 위해 ‘성폭행 당했다’고 허위 신고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20대 여사장 A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고 26일 밝혔다.
A씨는 2020년 6월 회사 직원 B씨에게 성폭행당했다고 허위로 고소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사실은 A씨는 지적장애가 심한 B씨를 속여 채무 3억6000여만원을 부담하게 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허위 성폭행 고소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그동안 특수강간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아오다 검찰 조사 단계에서 A씨의 무고 사실을 자백 받아 내면서 혐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지난 2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 박소정 판사는 무고 혐의로 기소된 걸그룹 출신 BJ A(24)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 했다.
이는 검찰이 구형한 징역 1년보다 더 무거운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CCTV 영상과 메신저 대화 내용 등 증거가 있어 피무고인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증거가 없었다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정신과 약을 먹고 있었다거나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며 변명으로 일관했다”며 선고 이유를 밝혔다.
A씨는 사건 당일 “B대표의 성폭행을 피하기 위해 방에서 도망쳐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뒤늦게 발견한 CCTV에는 느긋하게 방에서 나와 소파에 앉아 립글로스를 바르고 이후 쇼파에 편안한 자세로 누워 전자담배를 피우는 모습까지 취하는 등 여유로움까지 보였다.
사건 발생 후 사흘 뒤 같은 장소에서는 B대표를 다시 만난 A씨는 기분이 좋은 듯 팔다리를 흔들며 “깡충 깡충” 뛰는 모습도 CCTV를 통해 공개됐다.
“이날 A씨가 BJ 활동을 하는 데 금전적 후원을 해달라고 요청했고, 후원을 위해 노력해 보겠다는 답을 듣고 A씨가 기분이 좋아 그런 모습을 보였다” 는 게 B대표의 설명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무고의 동기나 이유가 없다. 오히려 A씨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던 B대표. 그런데도 A씨는 B대표가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고소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성범죄 재판시 피고인이 범죄사실을 극구 부인하는데도 재판부가 유죄판결을 내릴 때 단골로 등장하는 문구가 바로 “피고인을 무고할 만한 동기나 별다른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성범죄 재판에서 피고에게 ‘부실재(不實在)’를 일방적으로 증명하라거나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법정 다툼과정에 ‘성범죄 피해자다움’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것을 무조건 2차 가해로만 봐야 하는가 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법조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성범죄 사건 대부분이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B대표가 CCTV를 확보하지 못했거나 A씨가 의도적으로 CCTV 존재를 알고, 자동소멸 시점에 맞추어서 B대표를 고소했다면 사법부의 입장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번에 재판부가 “(피무고인)증거가 없었다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었다”고 밝힌 부분은 “무고 동기가 없거나 일관된 진술만으로도 유죄가 선고될 수도 있었다”는 위험성을 재판부 스스로도 인정했다는 점이다.
이 또한, 대부분의 ‘성범죄 무고 유죄사건’에서 재판부에서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다.
이 같은 사법부의 입장과 수사기관의 수사 관행은 결론적으로 성범죄 무고를 날로 교묘하고, 대범하게 만들었고, ‘현직 변호사도 놀란 여초 커뮤니티의 성범죄 무고 가이드(2024.3.25. 보도)’와 같이 일반 대중으로 확산되는데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다.
무고 범위는 이제 일부 특정 직업군 뿐만 아니라 직장인, 중소기업 대표, 가정주부까지 넓어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9월에는 인천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가 채팅 애플리케이션에서 알게 된 남성 29명으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당했다”고 협박해 4억5755만원을 뜯어낸 혐의로 A(31)씨와 B(26)를 구속 기소하기도 했다.
이들은 역할을 나눠 피해자들을 모텔로 유인한 뒤 술에 취해 잠든 척 연기하면서 신체 접촉을 유도한 뒤 “성폭행 당했다”며 합의금 명목으로 돈을 받아낸 것으로 조사결과 확인됐다.
합의금 명목으로 빼앗긴 돈은 1인당 평균 1578만원. 여기에서 주목할 대목은 범행이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졌다는 점과 이들에게 걸려든 남성 피해자만 29명. 모두 합의금 명목으로 돈을 뜯겼다는 것.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이들 중 억울하게 범죄혐의로 경찰에 입건 된 피해자도 있었다는 것이다. 억울하게 경찰조사를 받고 옥살이를 걱정했을 것이다.
익명을 요구하는 한 현직 경찰간부는 “성범죄 사건을 수사하다 보면 고소인의 무고가 의심되는 경우가 있지만 결정적 증거가 없을 때 뭘 물어보면 울면서 여성단체와 더불어 2차 가해를 운운하면 사실상 담당 경찰관은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며 “그렇다 보니 피고소인 중심으로만 수사하고 조금이라도 애매하면 기소의견으로 송치하는 경향이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언론도 자유롭지 못하다.
주요 언론에서 성범죄 피고인 변호를 맡은 정치 후보자나 이를 담당했던 공직자 후보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행태와 ‘성범죄 면죄부 창구 전락한 국민참여재판’, ‘성범죄자들, 국민참여재판 가면 절반이 무죄 났다’ ‘국민참여재판, 성범죄자들에게는 관대하다’ 등 언론 스스로 사법부가 되어 ‘유죄 확정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천대엽 대법관(법원행정처장)이 지난 1월 4일 주심으로 선고한 대법원 판결에서 “성범죄 사건을 심리할 때 성인지 감수성을 견지하더라도 피해자 진술에 따라 무조건 피고인을 유죄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밝혀 주목받고 있다.
이것이 6년 만에 기울어진 법원의 성범죄 사건 판결 흐름에 균형을 잡아줄지 법조계는 물론 수사기관도 민감하게 주시하고 있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