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불완전한 챔피언’이었기에 ‘만물의 영장’ 될 수 있었다[북적book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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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지구에 세포 형태의 생명체가 등장한 것은 대략 35억여 년 전. 기나긴 시간 동안 다양한 생물들이 탄생과 멸종을 거듭했지만, 현재 ‘모든 종의 지배자’는 겨우 700만여 전에 나타난 ‘인류’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먹이사슬 피라미드 상단에 공고히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알려진 것처럼 직립 보행과 큰 뇌와 같은 ‘완벽한(?)’ 진화의 결과 때문일까.

이탈리아의 진화생물학자인 텔모 피에바니는 그의 신작 ‘불완전한 존재들’에서 인류가 지배종이 된 것은 오히려 특유의 ‘불완전함’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완벽함이 있는 곳에는 역사가 없다”는 다윈의 말을 인용하며, 인류는 불완전함 때문에 급변하는 환경에서도 속도감 있게 적응할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저서에 따르면, 인류가 직립 보행과 큰 뇌 덕분에 손을 사용하고, 사고의 폭이 넓어져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지만 덕분에 평생 허리 통증과 관절염, 질식의 위험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한때 강력한 경쟁자였던 네안데르탈인은 인류보다 뇌가 더 크고, 인류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호미닌은 두발로 걸었지만 인류와 달리 멸종했다.

저자는 세간의 오해와 달리 진화의 핵심이 ‘최적화’가 아닌 ‘불완전한 땜질’이라고 봤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처음부터 완벽하게 다시 설계하기 보다 주어진 환경과 자원을 재사용하는 기민한 적응과 타협이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가 가진 특유의 ‘불완전함’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결점이 아닌, 생존과 진화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저자는 재해석했다.

저자는 인류를 직면한 질병, 기후 변화, 생태계 파괴, 인공지능(AI)의 위협 등의 문제는 진화적 불일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예컨대 질병의 문제는 번식기를 넘어서면 진화 과정에서 발달한 보호 기제들이 효과를 잃기 시작하는데, 인간이 번식기 이후에도 수십 년을 더 살다보니 질병이 생긴 것이다. 똑똑하게 진화된 뇌 역시 다른 동물에게 없는 각종 마음의 상처와 불안을 떠안게 살게 했다. 이처럼 진화적 불일치는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위협하며, 기술의 변화 역시 우리의 본질을 재정의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실망하기는 이르다. 저자는 인류가 35억 여년 간 불완전함과 창조적 타협으로 직면했던 다양한 도전들을 극복해왔던 것처럼 현재 인류를 위협하는 문제들 역시 불완전함이라는 ‘인간다움’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불합리함과 맹신에 귀 기울이는 우리의 성향에 이끌려 암울한 미래를 선택하는 대신에, 더 바람직하고 인간적인 미래를 가져와 사건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건 순전히 우리에게 달려있다.(중략) 어쨌든 그것은 다를지언정 (35억 여년 간 인류가 겪은 것과 같은) 불완전한 미래일 것이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존재들/텔모 피에바니 지음·김숲 옮김/북인어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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