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태일 기자] 최근 3년새 예술형 주화 시장이 3배 가까이 커지며 20조원에 육박하는 규모로 성장했지만 한국의 참여는 전무해, 전후방 사업 및 재정수입 확대를 위해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일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에 따르면 글로벌 예술형 주화 시장은 2019년 7조5000억원에서 2022년 19조9000억원으로 3년 새 2.7배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예술형 주화란 非유통주화로 자국을 대표하는 상징물을 주제로 금·은 소재를 사용해 발행하며 중앙은행이 그 순도와 무게를 보증하는 법정화폐이다. 귀금속 시세에 따라 판매가격이 달라지며 매년 동일한 주제로 발행된다는 점에서, 액면가격에 판매되며 일회성으로 발행되는 기념화폐와는 구분된다. 현재 미국, 중국, 캐나다, 오스트리아, 영국, 호주 등이 주요 발행국이다.
주요국은 자국의 역사·문화·예술적 상징물을 반영한 예술형 주화를 발행해 국내, 해외에 판매하며 국가 문화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이글’, 중국의 ‘판다’, 캐나다의 ‘메이플’, 오스트리아의 ‘필하모닉’, 호주의 ‘캥거루’가 대표적이다.
2022년 예술형 주화 발행규모는 미국이 4조9000억원으로 최대였다. 전체 주화 매출 중 예술형 비중은 2022년 기준 캐나다 91.6%, 영국 88.1%, 미국 70.3%로 나타났다. 반면, 예술형 주화를 발행하지 않는 한국은 유통주화 비중이 87.3%로 주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디지털화에 따른 현금 사용 감소로 유통주화가 사라지는 추세 속에서, 한국도 신산업 발굴 차원에서 예술형 주화를 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최근 해외에서 동양을 테마로 한 예술형 주화 수요가 늘고 있다. 하지만, ‘판다’ 위주로 발행하는 중국을 빼면 아시아에서는 발행국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非아시아권인 호주가 2008년~2019년 ‘십이간지’ 예술형 주화를 발행했고, 지난해 계묘년 ‘토끼’ 주화를 발행해 전세계에 판매하며 관련 수요를 대체하고 있다.
한경협은 “서양 중심의 주화 시장에 한국이 참여할 경우 희소성이 높아 신규 수요를 끌어낼 수 있고, 한국의 대표 이미지를 국제적으로 홍보할 수 있다”며, “일본, 아세안이 아직 시장에 참여하지 않은 지금이 기회”라고 강조했다.
주요국 예술형 주화는 밸류체인 단계별로 다양한 산업이 연관돼 있다. 먼저, ‘원자재 조달’ 단계는 귀금속 정제련 산업과, 재료가격 리스크 헷지를 위한 금융상품 등의 발달을 가져온다. ‘주화 제조’ 단계에서는 3D 조각, 금형제작, 제조용 기계장비·부품 산업의 성장이 동반되며, ‘유통·판매’ 단계에서는 전문유통사의 발달과 2차 소매시장 활성화 등 새로운 유통 생태계가 조성된다.
실제 미국의 주화 유통 부문의 경우, 조폐국이 예술형 주화를 수출하기 위해 전문유통업체를 지정해 판매 채널로 활용함에 따라 APMEX, A-Mark, Fidelitrade, MTB 등 대형 유통기업들이 활동 중이다.
주화를 발행하는 조폐국이 거둔 재정적 수익은 국가재정에 기여하고 있다. 캐나다는 왕립조폐국이 창출한 연간 850억원의 수익을 재무부의 재원으로 활용하고 있고, 오스트리아는 조폐국이 벌어들인 연간 1300억원의 수익을 중앙은행에 귀속시켜 재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예술형 주화 발행 시, 국민들의 금 보유량이 늘어나 국가차원의 외환 위험 대응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은 중앙은행이 금을 2000t 이상 보유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은 104.5t으로 세계 36위에 그친다.
예술형 주화는 가격이 귀금속 시세에 연동되기 때문에 주요국에서는 최근 고물가 상황에서 가치저장 및 투자의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고, 독특한 주화 디자인으로 수집용으로도 인기가 있다. 특히, 예술형 주화는 발행 당국이 중량과 순도를 보증하기 때문에 개인이 주화를 신뢰하고 구입할 수 있으며 국제적으로 쉽게 거래된다.
예술형 주화를 발행하지 않는 한국은 국민들의 금 등 안전자산 투자, 주화 수집 수요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해외 주화 수입규모는 최근 5년(2018~2022년) 연평균 349억원에 달한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K-팝, K-드라마 등 K-컬쳐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강국으로, 국가브랜드와 문화적 강점을 살려 예술형 주화 발행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