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두 달 연속 3%대를 찍은 데는 과일 값 고공행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국제유가 불안으로 석유류 물가가 14개월 만에 상승 반전한 영향이 컸다. 다만, 정부는 내달부터 물가 안정세가 본격화해 하반기 2%대 초중반의 상승률을 나타낼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농축수산물 가격 안정 자금에 더해 업계를 대상으로 한 가격인하 요청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물가를 잡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
2일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3.1% 올랐다. 지난 1월 2.8%로 내려갔다가 2월 3.1%로 올라선 뒤 두 달 연속으로 3%대 상승률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달에도 이상기후와 작황 부진 등에 따라 공급량이 줄어든 사과(88.2%), 배(87.8%), 귤(68.4%) 등 농축수산물(11.7%)이 전체 물가를 끌어올렸다. 사과·배의 물가 상승률은 각각 지난 1980년, 1975년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고치다. 이렇다 보니 농축수산물 역시 2년 1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으로 국제 유가가 오름세를 보이면서 석유류(1.2%)도 14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돼 체감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지수는 3.8%,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2.4% 각각 올랐다.
통계청은 정부의 농축수산물 납품단가 지원과 할인 정책 등이 없었다면 물가 상승률이 더 높아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다. 한 달을 10일씩 나눠 1~3순기로 보면, 농축수산물 물가가 1, 2순기에는 상승 흐름을 보이다가 납품단가 지원과 할인 정책 등이 집중된 3순기에는 꺾이는 흐름을 보였다는 게 그 이유다. 정부는 지난달 18일부터 1500억원 규모의 긴급 자금 투입을 시작한 바 있다.
공미숙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정책 효과가 정확하게 몇 % 반영됐다고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전체 통계의 기반이 되는) 순기별 지수는 올라가다가 꺾여서 내려오는 흐름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 [통계청] |
정부가 이날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물가 상승세가 확대될 우려가 있었으나 물가 상승의 고삐는 조였다”는 평가를 내놓은 것도 이런 흐름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물가 안정화 흐름이 내달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월부터는 기상여건이 개선되고 정책효과가 본격화되면서 추가적인 특이요인이 없는 한 3월에 연간물가의 정점을 찍고, 하반기로 갈수록 빠르게 안정화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최 부총리는 전날에도 “에너지·농산물 변동이 줄면 하반기 2% 초중반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물가 안정을 위한 농축수산물 가격안정자금 공급과 가공식품 업체의 가격인하 동참 등을 강조한 바 있다.
정부는 먹거리 물가가 안정될 때까지 이달에도 농축산물 정부 할인지원율을 20%에서 30%로 상향하는 등 긴급 농축수산물 가격안정자금을 계속 투입할 계획이다. 직수입 과일 물량도 상반기 5만톤(t) 이상으로 확대해 소형 슈퍼마켓에도 시중가보다 20% 저렴하게 공급하기로 했다.
농축수산물 유통구조 혁신을 위한 유통구조개선 태스크포스(TF)도 즉시 가동한다. 정부는 농산물 온라인도매시장 활성화를 포함한 농축산물 유통구조 개선방안을 마련해 이달 중 발표할 계획이다.
전문가들 역시 물가가 하반기로 갈수록 빠르게 안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근원물가를 보면 물가가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면서 “하반기 2%대로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에는 동의한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5월 들어 신선채소 공급이 늘고 과일도 좀 더 생산되면서 물가가 안정되는 방향으로 가지 않겠나 생각할 수 있다”면서 “다만, 환율이나 유가 등은 변수가 될 것”이라고 봤다.
누적된 물가 상승에 따른 국민 부담을 덜기 위해 부가가치세를 인하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요구도 계속되는 상황이다. 최 부총리는 전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부가세 인하 공약에 대해 “검토 요청을 했으니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정식 교수는 “부가세를 인하하면 물가 안정효과는 있겠으나 사실상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것이나 다름없어 건전재정 기조와 충돌한다는 문제가 있다”면서 “모든 항목에 적용하기보다는 최근 가격이 오른 일부 품목을 대상으로 하는 게 현실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