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사직 50일…한계 몰린 환자들 곳곳 ‘아우성’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행동을 이어가고 있는 전공의들을 직접 만나 대화하겠다고 제안한 가운데 지난 3일 오전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에 나선지 50일(4월 8일)이 코앞이다. 그동안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메운 의료진은 격무로 인해 이미 한계 상태고, 제때 치료를 못받아 살 수 있었던 인명이 죽는 일도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들에 ‘대화하자’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으나, 아직은 물밑 협상이 이뤄지는지조차 불투명하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사이 구급차로 호송된 환자가 응급실을 찾아 헤매는 ‘응급실 뺑뺑이’는 2배 넘게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4일 소방청에 따르면, 전공의 집단행동이 시작된 지난 2월 18일부터 3월 27일까지(38일) 동안 집계된 119 구급대 응급실 재이송 건수는 616건이다. 전공의 집단행동이 있기 전인 지난 1월 1일에서 2월 17일 사이(47일간)보다 약 2.5배 증가한 수치다.

이중 ‘병상 부족’을 이유로 재이송된 건수는 해당 기간 동안 32건→71건으로 2.2배 늘었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응급실 부족 25건→49건, ▷중환자실 부족 6건→8건으로, ▷입원실 부족 1건→14건으로 증가했다.

구급대가 구급상황관리센터에 병원을 알아봐달라고 요청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 2월 18일부터 3월 27일까지 구급상황관리센터의 일평균 이송병원 선정 건수는 162건이었다. 지난 1월 1일부터 2월 17일 사이 일평균 건수(99건)보다 약 61% 증가했다.

‘의료 공백’이 장기화 되면서 의료 서비스를 제때 받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충북 보은에선 물웅덩이에 빠졌다가 심정지 상태로 구조된 생후 33개월 여아가 3시간여 만에 사망했다. 보은의 한 병원에서 충청·경기 지역의 상급종합병원들로 옮기려 시도했지만 소아 중환자실의 병실 부족 등의 이유로 전원 요청이 거부됐다.

지난달 22일 충북 충주에서는 전신주에 깔리는 사고로 부상을 당한 70대가 병원 3곳으로부터 이송을 거부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구급대 이송 요청을 거부한 병원 측은 환자의 죽음이 의료계의 집단행동과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외에도 전라도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만성신부전증을 앓던 A 씨(여)가 3일간 대기하다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부산에서도 90대 노인이 심근경색으로 대학병원을 방문했으나 응급진료를 거절당해 울산으로 이송돼 치료받았으나 끝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두 사건은 모두 의사 집단행동 피해사례로 보건복지부에 접수됐다.

여전히 정부와 전공의 단체를 포함한 의료계와의 대화는 교착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대국민 담화에서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며 대화를 제안했으나 전공의들은 ‘침묵’하고 있다. 대신 전공의들에게 ‘조건없이 대통령을 만나보라’고 조언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간부는 결국 직을 내려놓았다.

환자들은 ‘아우성’이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70대 위암환자 박모 씨는 “정부가 대화하겠다고 나서면서 어느 정도 대화에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면서도 “그런데 교수들마저 외래진료를 줄여버렸다. 식구들 더 가슴 졸이고 그럴까봐 가족들 생각하면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폐암 환자인 이모씨는 “의사 교수들이 주 52시간만 근무한다고 했다. 의료공백 사태 이후로 초조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해서 혹시 뭐 나아지는 건 없나 이런 마음에서 매일같이 뉴스를 본다”며 “아픈 게 죄는 아니라고 자꾸 말하는데도, 아버지는 계속 ‘아픈 게 죄 같다’고 반복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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