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팬보다 익사이팅하던데”…‘밸류업’ 보고 간 외국인의 한마디 [유혜림의 株마카세]

[망고보드]

[헤럴드경제=유혜림 기자] “일본보다 더 흥미롭던데(exciting). 주총장에 마련해둔 외국인 투자자 안내문도 훨씬 잘 되어 있어.”

최근 여의도에서 한 코스피 상장사 주주총회를 다녀갔던 외국인 투자자의 이 같은 한줄평을 들었습니다. 지난주 글로벌 투자업계 인사와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 관계자들이 한국거래소를 찾았는데요, 이 외국인 투자자도 그 중 하나입니다.

몇몇 글로벌 ‘큰손’들은 공식 일정 외에 조용히 국내 기업 주총장을 다니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분위기를 살펴본 것으로 전해집니다. 얼마나 주주들과 소통하려고 하는지 등 여러 노력들을 살펴보기 위함이겠지요. 외국인 투자자들의 ‘밸류업’ 관심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 외국인 투자자가 흥미롭게 본 대목은 바로 이런 풍경입니다. 국내 한 대기업 IR부서에 “주총에 가고 싶어서 외국인을 위한 자료나 (통역) 지원이 따로 있냐” 물었더니 화들짝 놀라면서 없다며 사실상 오지 않았으면 하는 뉘앙스를 풍겼다고 해요. 그래도 현장 분위기가 너무 궁금해서 못 알아들어도 좋으니 일단 가봤다고 합니다.

그런데 웬걸, 자신 없어하는 모습과 달리 그 회사는 주총 안건 등 외국인 투자자를 위한 자료집을 너무도 깔끔하게 잘 준비해서 전달해줬다고 해요. “일본이 거버넌스(지배구조) 개혁한다고 시작했을 때보다 한국은 더 외국인 투자자를 맞이할 준비가 된 것 같다”는 게 그의 평가입니다. 여기에 ‘밸류업’ 가이드라인까지 더 해지면 얼마나 더 성장할지도 궁금하다고 했어요.

이번에 방한한 외국인 투자자들을 만나본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외국인들은 ‘기대감’과 ‘의구심’을 반반 품고 왔다고 합니다. 한국이 일본과 유사한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일본 증시에서 놓친 수익률을 회복할 기회라는 기대감이 컸다고 해요.

한편으로는 ‘밸류업’ 정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될지도 걱정합니다. 왜냐면, 일본도 시장 성과를 거두기까지 10년 넘게 걸렸거든요. 기업들이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밸류업’에 꾸준히 참여할지도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이는 외국인들이 주총장을 다니며 분위기를 살펴본 이유이기도 하죠.

사실 시장에선 22대 총선 이후 ‘밸류업’이 흐지부지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정부는 ‘밸류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배당 분리과세, 자사주 소각·배당 늘린 기업에 법인세를 감면해준다고 했지만 야당이 이를 반대하면 정책 동력도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세제지원은 기업과 투자자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아주 결정적인 ‘당근’입니다.

하지만 세법 개정은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는 사안이라 정치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지난달 22일 JP모건도 리포트를 통해 이 같은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짚으며 “이번 총선 결과는 기업지배구조 개혁(밸류업) 추진 속도감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밸류업’은 첫걸음을 떼기도 전에 위기를 맞은 걸까요. 여기에는 ‘밸류업’은 이미 대세가 된 ‘메가 트렌드’라는 반론이 맞섭니다. 주주환원을 골자로 한 ‘밸류업’은 총선 결과와 상관없이 정책당국이 꾸준히 밀고 갈 수밖에 없는 주제라는 거죠. 시장에선 2022년 1월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 사례를 기점으로 이른바 ‘개미 감수성(소액주주 권익보호)’이 민감해졌다고 봐요.

한 국내주식 운용역은 “2~3년 전부터 이미 금융당국이나 거래소 방침은 자사주 소각 유도, 공시 강화 등 주주권익 보호에 초점을 맞췄다. 이러한 기조에 ‘밸류업’이라는 정책 브랜드만 붙여진 것뿐”이라며 기대감을 놓지 않았습니다.

실제 올 3월은 ‘익사이팅’한 주총이었습니다. JB금융지주와 KT&G 주총에선 주주가 제안한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 사례가 나왔어요. 보수적인 성향인 국내 금융회사에서 주주제안(얼라인파트너스)으로 이사를 선임한 건 JB금융지주가 처음입니다.

실제 일본도 증시 부양책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의 자국 진출을 공개적으로 독려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일부 행동주의펀드는 지분이 적은 데다 소액주주·국민연금 등의 동참을 끌어내지 못해 실패도 맛봤습니다. 그래도 행동주의 펀드가 ‘절반의 성공’은 거뒀다고 볼 수 있겠지요.

서두에 소개드린 그 외국인 투자자도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올 하반기에 다시 한국을 찾겠다고 해요. “한국 기업들은 정말 역동적이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면서요. 그때도 ‘밸류업’ 열풍이 지속돼 더 많은 외국인이 한국 기업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영문 공시나 번역지원도 더 활발해진다면, 외국인 주주들도 주총장에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잔뜩 확인하고 갈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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