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가구 제조·판매업체들이 빌트인 특판가구 구매 입찰에서 10년간 담합을 벌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7일 현대리바트, 한샘, 에넥스, 한샘넥서스, 넵스 등 31개 가구 제조·판매업체의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931억원(잠정)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서울 시내 아파트 밀집 지역의 모습. [연합] |
과징금 규모는 한샘(211억5000만원), 현대 리바트(191억2200만원), 에넥스(173억9600만원) 등의 순으로 많다.
공정위 조사 결과 이들 업체는 2012년부터 2022년까지 24개 건설사가 발주한 738건의 특판가구 구매 입찰에서 사전에 낙찰 예정자를 합의하거나 입찰 가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담합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판가구는 아파트·오피스텔 등 대단위 공동주택의 건축사업에서 건설사 및 시행사를 대상으로 공급하는 빌트인 가구를 말한다.
주방가구에는 싱크대, 상부장, 하부장, 냉장고장, 아일랜드장 등이 포함되며 일반가구에는 붙박이장, 거실장, 신발장 등이 있다. 그 비용은 아파트 등의 분양원가 포함된다.
국내 건설사들은 특판 가구를 구매할 때 등록된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지명경쟁입찰을 해 최저가 투찰 업체와 계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건설사별 영업담당자들은 입찰에 참여하기 전 모임 또는 유선 연락 등을 통해 낙찰예정자, 들러리 참여자, 입찰가격 등을 합의했다. 낙찰예정자 또는 낙찰 순번은 주사위 굴리기, 제비뽑기, 선영업 업체 우대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사위 굴리기를 통한 낙찰순위 결정 및 제비뽑기를 해서 만든 낙찰순번표 [공정거래위원회] |
합의된 낙찰예정자는 카카오톡 등을 통해 들러리사에 견적서를 전달하고, 들러리사는 견적서 상 금액을 일부 높여 써내는 방식으로 합의를 실행했다.
가구업체들은 명시적인 낙찰예정자를 결정하지 않고, 수주를 원하는 업체가 다른 경쟁업체에 고가입찰을 요청하면서 견적서를 제공하거나 낙찰확률이 높은 업체에 견적서를 요청하는 방식을 쓰기도 했다.
이를 통해 견적서를 제공한 업체는 낙찰확률을 높이거나 높은 순위를 확보할 수 있었고, 받은 업체는 입찰참가 자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공정위는 “건설사 대부분은 가구업체들의 입찰참가 실적과 투찰가격, 신용평가결과 등을 토대로 입찰참가 자격을 유지·제한한다”면서 “가구업체들은 입찰참가 자격 유지를 위해 낙찰을 희망하지 않는 입찰에도 투찰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담합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관련 매출액(담합이 이뤄진 입찰 계약금액)은 1조9457억원까지 불어났으며, 아파트 분양원가 상승에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고 공정위는 지적했다.
공정위는 “국민의 주거공간인 아파트의 분양원가 상승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빌트인 특판가구 구매입찰 담합을 제재한 사례”라면서 “이번 결정은 중·대형 건설사가 발주한 특판가구 입찰담합을 우선 조사해 제재한 것이며, 약 70개 소형 건설사 발주 입찰에 대한 담합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를 통해 제재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