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이 야당의 압승으로 끝나면서 선거 결과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추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야당은 그동안 의대 증원 자체는 동의하면서도 2000명은 과도하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정부는 여당의 선거 패배를 계기로 의사들과 대화에 나서며 증원 규모를 조정할지 혹은 강경책으로 돌아서 집단사직한 전공의들에 대해 행정·사법 처분을 내릴지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다.
▶‘타협 혹은 강행’ 선택의 기로에 놓인 정부=22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정권 심판을 앞세워 승리한 만큼 정부는 의대 증원 추진의 동력을 상당 부분 잃게 됐다. 정부가 2000명 증원을 밀어붙이기에는 총선 패배의 후유증이 크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의료계와 보다 적극적으로 대화해 증원 규모를 타협하거나 추진 자체를 보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여권에서는 선거 전부터 의대 증원 추진이 판세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올해 초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렸던 정부의 의료개혁 강력 드라이브는 선거 일자가 다가올수록 지지율 하락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의정 갈등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되고 의료공백에 따른 국민 피해가 증가하면서다.
이에 여당 인사들은 ‘단계적 증원’ 등 정책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고,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중재자를 자처하며 의사들을 만나 유화 제스처를 취했다.
정부 역시 지난달 말부터 전공의들의 면허정지 행정처분과 관련해 유연한 대처를 강조했으며, 대통령이 직접 전공의와의 만남에 나서는 등 강경 대응에서 한 발 양보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야당이 향후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되면서 정부는 의사들과의 대화를 통해 의료공백 사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음 달 말 ‘2025학년도 대입전형 수시모집요강’에 의대 증원이 최종 반영될 때까지 의사들에 대한 설득을 이어가면서 타협안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정부가 중단했던 전공의 의사면허 정지 행정처분 절차를 재개하는 등 강경 대응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통령이 전공의 대표까지 면담했을 정도로 의료계와 대화하려고 노력한 만큼 강공 전환을 할 ‘명분’은 쌓였다고 판단, 선거 참패 후 더 큰 레임덕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민적 지지가 큰 의대 증원 추진에 공을 들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보건복지부는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의사면허를 3개월간 정지하겠다는 사전통지서를 보내 지난달 26일부터 면허를 정지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대통령의 ‘유연한 처리’ 방침에 따라 면허정지 본통지를 하지 않았으며 송달 절차도 중단했었다.
현재 막바지에 있는 의대 증원 추진은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지, 법률 개정 등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지는 않다. 더구나 정부와 여당은 물로, 야당과 시민단체, 환자단체 등 모두 의대 증원의 필요성은 공감하고 있다.
▶“여당 참패는 의대 증원 강행의 결과”…의사들, 대정부 압박 강도 높일 듯=의사단체는 선거 결과를 내세우며 정부에 2000명 증원을 백지화하라고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계는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원인으로 정부의 일방적 의대 증원 추진을 꼽고 있다.
의료계 인사들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총선 결과에 대한 개별 논평을 올렸다.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 1기 위원장을 지낸 정진행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SNS에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고 개인 기본권을 침해한 것을 용서하지 않은 국민 심판”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주수호 전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여당의) 이번 총선 참패는 14만 의사와 2만 의대생, 그 가족들을 분노하게 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이 결과는 2월 대통령이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발표한 순간 예상됐던 결과”라며 “자유의 가치를 외면한 보수 여당이 스스로 졌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 결과를 근거로 의협이 정부에 대한 강경 대응 수위를 한층 높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다음달 강경파인 임 당선인의 임기가 시작되면 의협이 대정부 투쟁을 선언하며 정부에 전면전을 선포할 가능성도 있다. 안효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