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이 사상 최대 격차의 여소야대(與小野大)로 끝나면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던 경제 정책이 더 속도를 내기 어렵게 됐다. 21대 국회에서 계류됐던 금융안정계정법 등 여러 법안들이 22대 국회에서도 통과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당장 금융당국 및 금융권은 그간 선거로 미뤄졌던 여러 과제 해결에 진땀을 뺼 전망이다.
일단 ‘4월 경제 위기설’로까지 번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사업장 정리는 ‘발등에 떨어진 불’인 만큼 금융당국이 서둘러 진행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전 금융권을 만나 부동산PF 사업장 중 사업성이 현격히 떨어지는 곳의 정리와 재구조화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여기에 선거 뒤로 미뤄둔 공공요금 인상·유류세 정상화 등으로 인한 하반기 물가 상방압력 역시 긴장을 늦추기 어렵다.
▶금융당국, 이달 중 부동산PF정상화 계획 낸다=금융권에서 가장 주목하는 것은 ‘4월 위기설’이다. 금융당국도 8일부터 2주간 시중은행, 제2금융권, 보험업권 등 모든 금융권과 만나 부동산 PF 사업장 현황을 파악하고 경·공매 활성화 논의를 벌이고 있다. 금감원은 사업성이 급격히 악화된 PF 사업장의 경·공매 등을 통한 정리·재구조화를 유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부실사업장 정리 촉진을 위한 ‘사업성평가 기준’ 개편도 추진 중이다. 기존의 사업성 평가는 ‘양호(자산건전성 분류상 정상)-보통(요주의)-악화우려(고정이하)’ 등 3단계로 나뉜다. 금감원은 이를 ‘양호-보통-악화우려-회수의문’ 등 4단계로 세분화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이달 중 PF 정상화 계획을 밝히고 내달부터 정상화 작업을 본격 실시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이 사업성 재평가를 추진 중인 국내 PF 사업장은 30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은행·증권·보험·저축은행·여신전문·상호금융 등 모든 금융권의 부동산PF 대출 잔액은 135조6000억원으로 같은 해 9월 말 134조3000억원 대비 1조4000억원 증가했다.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도 2.70%로 0.28% 포인트 상승했다.
건설사들의 신용등급 하락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들어 신용등급, 또는 향후 신용등급 조정 방향을 뜻하는 등급전망을 현재보다 강등한 건설사(신용등급 BBB- 이상)는 GS건설·신세계건설·한신공영·대보건설 등 총 4곳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금까지 이어져온 PF 대주단 협약이나 캠코 PF 펀드 등이 부실 사업장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인공호흡기를 달아놓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며 “총선이 끝나고 4월 중순이 지나면 부실이 터지는 복수의 저축은행이 나오고, 또 경공매를 통해 처리되는 PF 사업장도 다수 있을 거라는 게 업계의 시선”이라고 전했다.
▶서민경제 ‘직격탄’ 하반기 물가 상승압박도=PF에 대한 우려가 식지 않은 상황에서 하반기 물가도 안정세를 기대하긴 쉽지 않다. 상반기 공공요금 동결 기조가 대표적이다. 공공요금을 상반기 억눌렀기 때문에 하반기 상방압력이 자연스레 올라갔다.
3월 전기·가스·수도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4.9% 상승했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긴 하지만 지난해 28.1%와 비교하면 낮다. 기저효과도 있지만 정부가 공공요금을 동결한 때문이기도 하다.
2분기에도 비슷하거나 소폭 낮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전력공사는 지난달 21일 오는 2분기(4∼6월)에 적용될 전기요금을 현 수준에서 묶었다. 2분기 적용 연료비조정단가를 현재와 같은 킬로와트시(kWh)당 현재와 같은 5원으로 적용했다. 기본요금, 전력량요금, 기후환경요금도 따로 인상하지 않았다.
유류세 인하도 하반기 물가 불안 요인 중 하나다. 언젠가 정상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2월 말 종료 예정이었던 유류세 인하 조치를 이달 말까지로 2개월 연장했다. 총선 이후로 유류세 인하를 미룬 것이다. 이달말에도 추가 연장을 할 수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8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민생경제점검회의에서 “국제유가 불안이 지속된다면 유류세 인하를 올해 4월 이후에도 추가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하반기에도 유류세 인하가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인하가 계속될수록 재정에 미치는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산은 부산이전도 공회전?…“여야 갈등 불가피”=여야의 입장차이가 첨예한 금융 법안들도 통과되기까지 험로가 예상되고 있다. 지난해 말 마지막 정무위원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금융안정계정법(예금자보호법 개정안)과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산업은행 부산이전 등이 대표적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아직 여당 대표는 산은 부산 이전에 대한 찬성을 공식화하지는 않은 상황”이라며 “게다가 산은 이전을 외쳤던 야당 후보들이 낙선하면서 향후 법안 통과 여부는 예측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법안 통과가 더뎌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우선 예금자보호법의 예금보호험료율(예보료율) 한도 연장 등 향후 일몰 예정인 법안들을 우선순위로 통과시키기 위해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홍태화·홍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