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에서 범야권이 압승을 기록하자 경제계는 국회가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초당적 협력을 보여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반도체 등 첨단산업과 탈탄소 부문의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투자 활성화 및 탄소 중립 지원 등을 위한 다양한 입법이 신속하게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전세계 반도체 패권 전쟁인데…“한국만 직접 보조금 없다”=현재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 주요국들은 수조원대의 보조금을 내세워 칩 생산 시설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반도체는 한국에도 핵심 첨단 산업이지만 정작 직접 보조금 등이 없어 경쟁국 대비 정책 지원이 취약하다. 이에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여야가 확실한 인센티브 정책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자국 반도체 산업 부흥을 위해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을 제정해 70조원 이상의 예산을 마련하고 인텔, TSMC, 삼성전자 등에게 수조원의 생산 보조금을 지급한다. 일본도 반도체 부활이란 목표 하에 TSMC 등 자국 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35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마련했다. 독일, 인도도 각각 인텔과 마이크론 공장 설립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한다.
반면, 한국은 세액공제나 최대 150억원의 지역투자 보조금 국비 지원 외에 대규모의 직접 보조금이 없다. 투자유출 가속화를 막기 위해 직접 보조금 제도를 신설하거나, 영업이익과 무관하게 세액공제액을 환급해주는 ‘다이렉트 페이(Direct Pay)’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경제계는 호소하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조세특례제한법이 지난해 5월 발의됐지만, 현재 소위 계류 중이다. 일반 연구·인력개발비(R&D)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10%, 중견기업 13%, 중소기업 30%까지 상향하는 법안 역시 법안 심사소위에서 계류된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 지원은 촌각을 다투는 타이밍 싸움이기 때문에 투자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온적 탄소 중립 지원…“인프라 인허가 단축 등 절실”=주요 국가들이 세액공제,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지원에 나선 탄소중립 분야에서도 여야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투자금 4370억달러(약 592조원) 중 84%인 3690억달러(500조원)를 에너지·기후 분야에 투입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청정에너지로의 산업구조 전환을 의미하는 ‘녹색전환(GX) 추진전략’을 발표, 10년간 민관에 150조엔(1400조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국내서도 무탄소에너지 투자 기업에 대해 세액공제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은 IRA를 적용할 시 무탄소에너지 투자 기업에 세액공제율을 30%까지 적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최대 3%에 그친다.
신재생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 불필요한 인허가 과정을 없애는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례로 덴마크는 풍력발전 인프라 조성에 속도를 내고자 에너지청이 인허가와 이혜관계자 민원사항까지 일괄처리하는 ‘원스톱샵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제도를 통해 사전조사부터 최종인허가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34개월에 불과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풍력발전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다수 기관의 인허가, 복잡한 절차 등을 거쳐야 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풍력발전 조성과 관련해 지자체별로 승인 조건, 심의 횟수, 협의 기간 등이 상이하다”며 “까다로운 조건으로 인해 풍력발전 단지 구축을 완료하는 데 10여년이 걸린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22대 국회는 입지 발굴에서 인허가까지 풍력발전 전 과정을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부진·무역 갈등 가시화 전기차 시장…“국회 협치 간절”=‘일시적인 수요둔화(캐즘)’ 현상을 맞은 전기차·이차전지 분야에 대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앞으로 2~3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산업군 전반의 부진, 선진국 정부가 주도하는 자국 우선주의에 대한 대비가 우선시 돼야 한다는 중론이다.
지난달 중국 상무부는 전기차 보조금 차별 논란이 일었던 미국 IRA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미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IRA를 추진하고 있지만, 실상은 자유무역주의 기조를 해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유럽연합(EU)도 IRA에 근거한 전기차 보조금을 미국과의 주요 통상 쟁점으로 삼고 있다. 세계 경제의 3대 축인 미국-중국-EU가 격돌하면서, 향후 상황이 빠르게 급변할 가능성이 높다.
업계는 일선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강화, 무역 문제 해결에 국회가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간 기업은 각국의 정부 뜻에 항명할 수 없는데, 의원 중심의 세제혜택 강화와 외교채널 확대등이 이를 해결하는 기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당장 글로벌 전기차 트렌드 중심의 원가절감에 대한 이슈 문제가 있는데, 이를 지원해 줄 정부 정책은 없는 것이 실상”이라면서 “이번 선거에서 쟁점이 된 연구개발(R&D) 예산에 대한 실제 지원책만 마련된다고 해도 큰 힘이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완성차 분야는 전동화 전환에 맞춘 노동의 유연화, 이차전지 분야는 작업 수율 확보를 위한 전문 기술자의 육성이 시급한 실정이다.
경총 관계자는 “시대적 과제인 노동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국회가 주도적으로 나섰으면 한다”라면서 “경영계도 적극적인 투자와 일자리 창출로 경제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새 국회와 손을 잡는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지·한영대·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