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부터 1939년까지 전개된 스페인 내전은 끔찍했다. 이는 사회주의·공산주의·공화주의·반파시즘을 이념으로 하는 좌파 연합세력 스페인 인민전선과 자본가 계급과 가톨릭교회, 극우파 군부가 합세한 프랑코 장군 세력 간에 벌어진 계급 간 충돌이요, 종교 간 증오의 표출이었고 좌·우 이념 대결의 장이었다.
여기에 인민전선을 지원한 소련과 프랑코 장군 편에 선 이탈리아, 나치 독일, 로마 카톨릭 등 외세까지 개입했다. 프랑코 측이 수도 마드리드를 함락시키면서 내전은 막을 내렸지만 도처에서 학살이 자행되면서 무려 50여만 명의 사상자를 낳았고 나라는 초토화되었다.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그의 역작, 게르니카를 통해 이 학살의 참극을 세상에 고발했다.
15세기 후반 혹독한 종교의 이단심문(異端審問) ‘리콘퀘스타’에서부터 20세기 스페인내전에 이르기까지 수 세기에 걸친 스페인 이베리아반도 역사에서 보듯이, 오랜 기간 쌓인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면 그 사회는 폭발하기 마련이다. 이를 순화시키고 수렴하는 장치가 민주적 선거제도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병에 걸려 있으면 선거 제도는 증오와 갈등을 증폭시키며 사회를 응징과 보복의 악순환에 빠져들게 한다. 이렇게 되면 사회에는 극도의 혼란이 야기되고 종국에 가면 포퓰리즘 독재가 득세하면서 공동체에 파국을 불러온다.
이번 우리 국회의원선거가 과거 세력에 대한 ‘척결’과 현 정권의 ‘심판’ 목소리만 난무하며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고 이를 증폭시켰다는 점은 매우 우려스러운 조짐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달이 나게 된 데에는 윤석열 정부가 좌·우 진영을 가르는 과도한 애국주의로 경도되면서 사회를 긴장시키고 갈등 국면을 조장해 왔다는 데에서 일정 부분 기인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점에서 ‘애국주의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과도한 충성심을 불러와 종국에는 폭력을 행사하게 한다’며 이를 경계했던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지적을 우리는 반추할 필요가 있다.
선거가 끝난 현시점에서 이긴 쪽은 이번 선거의 진정한 승자가 되기 위해서 손에 쥐고 있는 ‘보복의 칼’을 내려놓고 화해와 포용의 길로 나가야 한다. 정제되지 못한 민주주의는 자칫 흉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집권세력 측도 그동안의 편협한 세계관과 외골수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성찰이 불가피한 국면임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대외적으로는 국제질서에서의 신냉전 구도 형성과 세계 다극화 현상, 우리 경제영토의 축소조짐, AI·반도체 전쟁 등… 국내 현안으로는 짓누르고 있는 국가·기업·가계 3대 부채 문제와 저출산·고령화사회 현안 그리고 부의 극심한 양극화 문제 등이 그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정치권이 떠맡아야 할 몫이다.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화해와 타협이 절실하며 우리 사회 내부의 평화체제 구축이 어느 때보다도 시급하다. 이를 구현하는 방식은 거국적 내각 구성과 광범위한 인사 탕평책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으로 보인다. 이점에서 끔찍했던 스페인 내전은 갈등이 증폭되어 가기만 하는 작금의 우리 정치에 대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역사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장준영 헤럴드 고문 전 항공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