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패싱’…명품마저 양극화

“경기 침체와 해외여행 정상화로 20·30대 고객이 이탈했고, 실수요자 중심으로 명품 시장이 개편되고 있습니다.”(백화점 관계자)

명품 시장에서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로 불리는 하이엔드 명품은 여전히 잘 팔리지만,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낮은 매스티지(대중 명품)의 실적은 기대 이하다. 올해 1분기 백화점을 중심으로 명품 매출이 다시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나 양극화는 더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명품 중의 명품’이라고 불리는 에르메스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23%, 12% 상승한 7972억원, 2357억원이었다. 루이비통코리아는 전년 대비 매출이 412억원 감소한 1조6511억원이었지만, 영업이익은 2867억원을 기록했다.

두 브랜드의 영업이익률은 각각 30%, 17%대다. 불경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다른 업종보다 높은 편이다. 영업이익률이 5~10% 수준인 패션업계와 대비되는 수치다. 하이엔드 명품일수록 콧대는 더 높았다. 크리스챤디올꾸뛰르코리아도 지난해 매출이 12% 상승한 1조456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도 30% 수준이다.

하이엔드와 달리 일부 매스티지 브랜드의 경우는 실적이 눈에 띄게 악화됐다. 한국에서 루이까또즈 브랜드를 운영하는 크리에이션엘의 지난해 매출은 496억원으로 전년 대비 13% 줄며 적자 전환(27억원)했다. 메트로시티를 운영하는 엠티콜렉션 또한 지난해 매출이 645억원으로 전년 대비 11% 줄고 영업적자가 전년(32억원) 대비 2배 수준인 62억원으로 늘었다.

엔데믹 후 명품 시장의 전체 성장률은 둔화된 상황이다. 컨설팅기업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2021년 31.8%, 2022년 20.3%에 달했던 세계 명품 시장의 성장률은 지난해 3.7%에 그쳤다. 엔데믹 이후 해외여행이 정상화되면서 구매력을 가진 젊은 소비층이 해외로 눈을 돌린 현상도 국내 명품시장의 위축 요인으로 꼽힌다.

하이엔드 명품 수요가 백화점 매출을 견인하면서 업계는 소비 여력이 있는 VIP고객에 집중하고 있다. 최부유층을 겨냥한 명품 아동복 라인이나 주얼리가 늘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신세계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의 1분기 명품 매출 신장률은 각각 10.1%, 11.2%로 지난해 한 자릿수 성장률보다 개선됐다.

명품 브랜드들은 한국에 없던 품목을 내세워 매출 확대에 나서고 있다.

루이비통은 지난 5일 주얼리 전문 매장을 신세계 강남점에 열며 운영을 시작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압구정본점에 베이비 디올 매장을, 판교점에 펜디 키즈를 열었다. 3월에는 판교점에 키즈 겨냥 몽클레어 앙팡을 추가로 열면서 명품 아동 MD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성장이 빨라 오래 입지 못하더라도 명품 아동복을 소비할 여력이 있는 실수요자를 노린 전략이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서울 명품관 이스트 지하 1층 유휴 공간을 바꿔 명품시계 공간을 확대하고, 스위스 시계 브랜드 브레게와 오메가를 지난달 리뉴얼 오픈했다. 오는 6월에는 스위스 브랜드 파텍필립이 기존 매장을 2배로 넓혀 재개장할 예정이다.

서울의 한 백화점 관계자는 “경기 침체 속에서 실수요자 중심으로 명품 시장이 바뀌고 있다”며 “일부 브랜드는 중저가 상품을 단종시키는 등 하이엔드 럭셔리로 리브랜딩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희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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