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가 피난처 됐다”…강달러에 전세계 통화 ‘휘청’

[로이터]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견조한 미국 경제와 중동 위기 고조 등의 영향으로 달러 강세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금리 인하 지연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강달러 추세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유로화·엔화 등 주요국 통화들이 달러 앞에 무너졌고 특히 중국·인도 등 신흥국 통화 가치가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아시아 전역이 환율 비상사태에 직면한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은 개입을 선언했다.

16일(현지시간) 미국 달러 지수(DXY)는 전날보다 0.04% 상승한 106.24를 기록해 5개월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달러 지수는 유로화, 엔화 등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상대적 가치를 의미한다.

블룸버그 달러 현물지수도 1266.08을 기록해 지난 9일부터 5거래일 연속 연고점을 돌파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경제 전문가들은 달러가 더 오래 강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해 올해 연말에 달러 지수가 107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파월 말 한마디에…달러 강세 계속

16일 파월 연준 의장의 발언이 달러 강세를 거들었다. 파월 의장은 이날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행사에서 연준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목표치인 2% 달성이 예상보다 오래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경제 지표는 확실히 더 큰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된다면 현재의 긴축 통화정책 수준을 필요한 만큼 길게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은 인플레이션 둔화세가 진전을 보일 때까지 현 5.25∼5.50%인 기준금리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파월 의장 발언으로 이날 2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이 5%를 돌파하는 등 국채 금리 상승이 이어졌고, 이에 따라 미국과의 금리차가 의식되면서 달러를 사들이는 움직임이 더 강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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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다 이란의 이스라엘에 대한 직접 공습으로 중동 위기가 고조되면서 ‘안전 자산’인 달러 선호가 높아진 것도 달러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 한국의 경우 16일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00원을 돌파하는 등 중동 위기에 더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유로화, 엔화, 원화가 모두 하락해 ‘달러 1강(强)’이 선명해졌다”며 미국 조기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 감소, 유사시 대비 달러화 매수, 중동 정세 악화에 따른 높은 원유 가격을 그 배경으로 꼽았다.

워싱턴 모넥스USA의 후안 페레즈 트레이딩 디렉터는 해외 외환시장이 이스라엘이나 파월 의장 등 여러 요소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면서 “이러한 상황은 다른 어떤 것들보다 달러를 안전한 피난처로 만든다”고 지적했다.

신흥국 타격 커 “원화·루피아 특히 하락”

이 같은 상황에서 경제 규모에 상관없이 당분간 강달러는 전세계적인 현상이 될 전망이다. 16일 유로화, 캐나다달러도 각각 달러당 1.0631유로, 1.3785캐나다달러로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엔화도 파월 의장의 발언이 전해진 직후 엔/달러가 154.787엔까지 뛰는 등 1990년 이후 최고치를 하루 만에 다시 썼다.

특히 신흥국 통화가 달러 강세에 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16일 오후 기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 통화지수는 전일 대비 0.27% 하락해 1708.92을 기록해 올해 들어 해당 지수 하락률은 1.8%에 달했다. 최근 한 달 간 미국의 3월 소매 판매지수가 전월 대비 0.7% 늘어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증가세를 보이는 등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자 해당 지수는 내림세를 이어갔다.

같은 날 인도 루피화는 달러당 83.5350로 마감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고, 중국 위안화도 달러당 7.24위안으로 위안화는 올해만 2% 가량 하락했다. 브라질 헤알화도 1년여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콜롬비아 페소화 역시 큰 폭 하락했다.

로이터는 “대부분의 아시아 통화가 하락했으며, 한국 원화와 인도네시아 루피아가 특히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전세계 금융당국 비상…통화 방어 나서
16일(현지시간) 파월 의장의 발언이 전해진 직후 엔/달러가 154.787엔까지 뛰는 등 1990년 이후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AFP]

각국 금융당국은 시장 개입 가능성 등을 언급하며 자국 통화 방어에 나섰다. 마이너스 금리 종료 선언 이후에도 달러가 잡히지 않는 일본 금융당국은 연일 환율 관련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로이터는 “1990년 이후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엔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수입 비용이 상승해 가계 소비에 타격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은 지난 12일 “당국은 최근 엔화 하락뿐 아니라 이러한 움직임을 주도하는 요인들을 분석하고 있다”며 “과도한 움직임이 있다면 모든 옵션을 배제하지 않고 적절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기존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 일본 재무장관은 16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를 계기로 만나 급격한 외환시장 변동성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최근 원화와 엔화의 통화가치 하락에 대한 심각성에 공감하면서 외환시장 변동성에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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