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술 유출, 영업비밀 보호시스템 갖춰 대비해야”… 그들의 조언[기술유출 잡아라]③

법무법인 세종 여인범(왼쪽부터), 윤주탁, 정창원 변호사가 11일 서울 종로구 법무법인 세종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이용경 기자] 기술유출범을 잡는 일이 수사기관의 몫이라면, 유출 피해를 입은 기업의 적절한 대응을 돕는 일은 전적으로 변호사들의 몫이다. 점증하고 있는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서 기업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헤럴드경제가 법무법인 세종의 핵심 변호사 3인방을 만나 기술유출 사건 쟁점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재 법무법인 세종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5G 이동통신, 2차 전지 등 다양한 분야의 국내·외 기술유출 사건을 맡고 있다. 산업기술 유출 사건은 형사 사건뿐만 아니라 사용금지를 구하는 가처분, 손해배상 등을 구하는 민사소송, 경쟁업체로 이직을 금지하는 가처분 등이 함께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세종은 주로 국외 기술유출 사건에서 피해 회사를 대리해 왔다.

산업기술 유출 피해 기업을 대리하는 로펌 중 업계에 정평난 법무법인 세종의 윤주탁·정창원·여인범 파트너변호사는 지난 11일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기술유출 사건의 특성에 관해 “최근 기술유출 범죄는 재직자, 퇴직자, 협력업체 등과 같이 합법적으로 산업기술을 취득 및 보유한 사람들의 배신 행위에 의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퇴직자나 협력업체에 의한 유출을 방지할 수 있는 산업기술 영업비밀 보호시스템을 잘 갖춰 놓는 것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윤주탁 변호사가 11일 서울 종로구 법무법인 세종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기술유출 피해 사건의 법적 대응 절차는?

▶윤주탁 변호사: 산업기술 유출 범죄는 피해 기업이 유출 증거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드물어 먼저 고발, 진정을 통해 형사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민사 절차에서 증거 수집에 한계가 있다. 기업이 기술유출 증거를 어느 정도 확보한 경우가 아니라면 민사 절차를 먼저 진행해서는 사건을 해결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에 강제 수사를 통해 형사 처벌을 꾀하고 수사 기관이 확보한 증거들을 합법적으로 확보해 민사상 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방식으로 통상 대응한다. 특히 기술유출 사건의 초기 대응은 압수수색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수준의 초기 증거 확보와 설득이 사건의 성패를 좌우한다. 업무용 PC, 외장하드, 이메일 서버 등에 대한 포렌식을 통해 자체적으로 일부 증거가 확보될 수 있는 경우에는 형사 절차와 민사소송이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디지털포렌식센터를 갖춘 세종은 사건 초기부터 관여해 증거 확보, 절차 선택, 수사기관 설득, 공판 지원, 민사 절차 진행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산업기술 유출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은?

▶윤 변호사: 산업기술 유출 범죄 사건에서는 대부분 유출된 기술이 무엇인지, 유출된 기술이 산업기술이나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 등이 공통적으로 다퉈진다. 특허 분쟁에 비하면 문제되는 기술의 범위가 상당히 넓어지고 많아질 수 있는 특징이 있고, 산업기술 유출자들이 유출 증거들을 철저하게 인멸하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또한 다수의 관여자들이 여러 단계에 걸쳐 관여하고, 회피설계(design around,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제품 설계)가 증가해 유출자의 산업기술 사용 여부와 침해의 고의가 다퉈지는 경우도 많다.

-산업기술 유출 피해 기업들이 주로 겪는 어려움은?

▶정창원 변호사: 산업기술 유출 수사나 형사 공판 단계에서 피해자들이 산업기술에 관련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당사자이자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절차에 관여할 법적 근거가 부족해 적극적으로 설명하거나 의견 개진 등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현행 형사소송법 자체가 기본적으로 기술유출 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해 설계된 제도가 아니고, 부정경쟁방지법이나 산업기술보호법에서 형사절차와 관련한 특별 규정들이 별도로 존재하지도 않는 점도 어려움으로 다가오는 지점이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정보에 접근할 수가 있는데, 실제로는 개인정보보호법이나 기타 법률 때문에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극히 제한돼 있는 상태다.

정창원 변호사가 11일 서울 종로구 법무법인 세종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각 산업별 기술유출 사건에 차이가 있는지?

▶윤 변호사: 기술 분야별로 특별한 차이는 없다. 다만 기술발전 속도가 빠르고 복잡도와 난이도가 높은 기술분야일수록 보호해야 할 기술을 특정하고 가치를 설명하는 것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정 변호사: 최근에는 미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이슈들이 생기면서 실제로 반도체나 장비 관련된 기술유출 사건들이 조금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디스플레이 산업의 경우에는 한국이 압도적 기술력을 갖고 있는 회사들이 많은데, 현재 중국이 디스플레이 분야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실제로 급성장을 하고 있는 분야다 보니까 이쪽으로 기술유출 사건들이 많아지는 추세로 보인다.

-기술유출 사건 관련해 전문재판부나 전문수사부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윤 변호사: 대표적인 기술사건으로 꼽히는 특허 분쟁에 대해서는 서울중앙지법, 특허법원으로 관할 집중이 이뤄졌고, 기술유출 사건에 대해서도 법원 내부와 국가지식재산위원회에서 전문화를 위한 관할 집중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법원과 수사기관에서도 상당한 전문성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잦은 인사로 인해 수사와 재판이 지연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신속한 처벌, 금지가 필요한 피해 회사로서는 이 부분이 가장 아쉬운 문제로 다가온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고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변호사의 산업기술 분야 분쟁에 대한 전문성과 기술에 대한 높은 이해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언론보도에서 산업기술 유출범의 구속 건수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한 견해는?

▶여인범 변호사: 약 3~4년 전까지만 해도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대해 구속 수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고, 유죄라도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최근에는 구속 사례가 많아지고 있고 양형기준도 상향되는 등 처벌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특히 국가핵심기술 유출의 경우에는 구속 수사하는 추세가 더 강화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여인범 변호사가 11일 서울 종로구 법무법인 세종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로펌은 가해 기업과 피해 기업 중 주로 어디를 대리하는지, 각각의 대응전략은 어떻게 다른지?

▶정 변호사: 국내 대형 로펌들은 주로 대기업을 기존 고객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피해 기업을 대리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대응전략상 차이라고 한다면, 피해 기업 입장에서는 기술의 가치를 강조하고 중요성을 부각시켜야 하는 반면, 가해자인 상대방 측 입장에서는 해당 기술이 공개된 기술이고 쉽게 모방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강조하는 부분으로 나뉠 것 같다.

-산업기술 유출 피해가 있을 경우 기업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윤 변호사: 평소 영업비밀 보호를 위한 매뉴얼을 확립해 프로토콜에 따라 영업비밀을 관리하고, 영업비밀 유출의 징후가 있을 때는 매뉴얼에 따라 신속하게 증거 수집 및 보안 유지 등의 조치를 취해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또 사안의 중요성, 산업기술, 유출 근거 등을 잘 설명해 수사기관이 신속하게 수사를 개시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포렌식 등을 통해 기술 유출 자료를 사전에 확보하는 것이 분쟁 해결의 핵심 관건이다. 이를 위해 산업기술 영업비밀 보호시스템을 잘 갖춰 놓는 것이 중요한데, 이러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을수록 기술유출이 발생했을 때 문제되는 지점을 빨리 포착해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용이해진다.

-기술유출 사건 변호사로서 업무에서 느끼는 보람이라면?

▶여 변호사: 기술과 관련된 법률을 주로 담당하다 보니 회사의 엔지니어들과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에 대해 애정도 높고 자부심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기술들이 유출되는 데 대해 굉장히 속상해 하고 자기 일처럼 마음 아파한다. 그런 사건들을 맡아 그들이 생각하는 정도의 처벌 등의 법적 결과를 얻어내면 상당히 좋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변호사로서 소소한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법무법인 세종 정창원(왼쪽부터), 윤주탁, 여인범 변호사가 11일 서울 종로구 법무법인 세종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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