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00원 오르자 자본비율 0.3%P 빠져…강달러 더 거세지면 은행이 흔들린다[머니뭐니]

서울 중구 명동 환전소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어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중동 정세 불안으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은행 자본비율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외화 위험가중자산의 원화 환산액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2022년 3분기 환율 상승기엔 100원 상승 당 총자본비율이 약 0.3%포인트 가량 떨어졌다.

유동성도 나빠질 수 있다. 외환 파생상품 거래에 필요한 증거금이 늘어나 급격하게 부족해지면 유동성 자산을 팔아서라도 메꿔야 한다. 보험사 등도 환헤지 비용이 늘어나면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1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7.7원 내린 1386.8원에 거래를 마쳤다. 환율은 종가 기준으로 지난 5일부터 7거래일 연속 연고점을 경신했다가 이날 8거래일 만에 하락 마감했다.

환율은 전날 1,400원선을 터치한 이후 외환당국이 구두개입에 나선데다 장중 위안화 강세에 연동해 낙폭을 키웠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은 여전히 1300원대 후반으로 1400원대가 위험한 상황이다.

환율 상승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하면서 촉발됐다. 이어 이란이 이스라엘을 보복 공격하고 이스라엘도 보복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는 등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그 오름세가 더 거세졌다.

환율이 급격하게 오르면 외화 위험가중자산의 원화 환산액을 키운다. 자본비율이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22년 3분기를 보면 이해가 쉽다.

2022년 12월 한국은행이 내놓은 ‘환율이 금융부문에 미치는 리스크 파급경로 및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의 2022년 3분기 총자본비율은 전분기 말보다 0.59%포인트 하락했다. 당시 9월 환율은 1400원 중반까지 올라 200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환율 상승은 2022년 3분기 국내은행의 총자본비율 하락 원인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했다. 한은은 환율 142원 상승에 따른 가격 효과를 0.46%포인트로 분석했다. 환율이 100원 오를 때 자본비율은 0.32%포인트 하락했단 것이다.

외화표시 위험 가중 자산 증가 효과는 0.06%포인트로 분석했다. 총자본비율이 1년간 1.58%포인트 하락했다. 이 중 환율 상승 및 외화 위험가중 자산 증가에 따른 영향은 1.35%포인트에 달했다.

유동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22년 9월 환율이 7% 가깝게 오르자 외국계 은행에 대한 국내은행의 장외 외환파생상품 관련 추가 증거금 납입액이 급증했다. 고유동성 자산이 증거금 납입을 위해 사용됐다. 국내 8개 은행의 고유동성 자산이 5조4000억원 줄었다. 은행의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은 평균 1.28%포인트 감소했다. 보험사 등도 환헤지 비용이 늘어나면서 유동성 문제를 겪을 수 있다.

한은은 “과거에 비해 환율 상승의 금융시스템 파급경로가 다변화되고 영향력도 강화된 점을 감안할 때, 높은 수준의 환율은 당분간 금융기관의 유동성 및 건전성 관리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우리 경제는 대외 의존도가 높아, 환율급등이 금융시장 불안과 맞물릴 경우 금융기관의 유동성 및 건전성 저하와 금융시장 간의 변동성이 상호 증폭될 수 있어 이를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노력이 중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최근 나타난 환율 상승세도 과거와 비슷한 형태로 금융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 일부 개선 흐름을 나타낸 은행 자본비율이 다시 악화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실제로 하나증권은 지난 15일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불안 우려에 은행주 조정 국면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정욱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 추이가 상당히 중요할 것”이라며 “환율이 급등하는 양상이 지속될 경우에는 외국인 자금 이탈과 은행 자본 비율 하락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어 수급 측면 및 주주 환원 기대 측면에서 이를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최악의 사태 땐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2020년 3월 마진콜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비은행권은 외부 충격에 대한 대응능력이 취약하여 시스템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정책 당국은 ‘과거 위기상황’과 거래 특성을 반영하여 비은행금융기관들이 유동성 대응 여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유동성 규제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말한 과거 위기상황이 2020년 3월 마진콜 사태다. 당시 증권사는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주가지수가 일제히 폭락하면서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에 시달렸다. 이 과정에서 환율 급등세가 이어지며 자금 조달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충분했다고 생각했던 유동성이 부족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사태 직전인 2019년 말 기준 증권회사 유동성비율은 133.7%(잔존만기 3개월 이내 유동성자산/잔존만기 3개월 이내 유동성부채)에 달했다. 규제비율(100% 이상)을 크게 상회했다. 그러나 다수의 증권회사가 유동성 부족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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