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명동 환전소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어 있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워싱턴 D.C) 김용훈 기자·서울 홍태화 기자] 원화 실질 가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5번째로 저평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20개국(G20) 중에선 4번째로 저평가 됐다.
달러 강세 기조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관통하고 있지만, 이에 따른 통화 평가 절하 영향은 각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환율이 유독 튀어 오르면서 원화의 실질적인 구매력이 낮아졌다.
외환당국은 이에 연일 환율 변동성 완화를 위한 개입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 환율이 과도하게 뛰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달러 강세 기조가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던 2022년 중반에 비해 비교적 일시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18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실질실효환율(Real effective exchange rate) 지수는 2월 말 기준 96.7(2020년=100)을 기록했다. BIS 통계에 포함된 OECD 가입 37개국 중에서는 한국이 일본(70.3), 튀르키예(90.2), 노르웨이(95.3), 이스라엘(95.6) 등에 이어 5번째로 수치가 낮았다. G20 중에서도 일본과 튀르키예, 중국(93.4)에 이어 4번째로 낮았다.
실질실효환율은 한 나라의 화폐가 상대국 화폐보다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가졌는지를 나타내는 환율이다. 이는 기준 시점과 현재 시점 간의 상대적 환율 수준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수치가 100을 넘으면 기준 연도 대비 고평가, 100보다 낮으면 저평가되었다고 간주한다.
한국의 실질실효환율 지수는 외환위기 당시 68.1,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78.7까지 떨어진 적 있다. 근래에는 2020년 10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100선을 웃돌다가 이후 90 중반대를 맴돌았다. 환율이 1400원대를 돌파했던 2022년 10월 일시적으로 90.7까지 내려갔다.
미국 경기 호조로 달러화가 강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가 동반 약세를 보이는 점이 원화 가치 하락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의 실질실효환율 지수는 2월 말 기준 108.1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반면에 일본은 2022년 4월부터 80선 아래로 내려앉았고, 중국도 같은 해 10월부터 100선을 밑돌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일본 엔화 절하가 굉장히 크고, 중국 위안화 역시 절하 압력을 받고 있다”며 “주변국 통화에 프록시(Proxy·대리) 되다 보니 원화가 우리 펀더멘털에 비해 과도하게 절하된 면도 있지 않나 의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전날 외신 인터뷰에서도 “달러화 강세뿐 아니라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이 환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엔화와 위안화 약세도 영향을 미친다”고 언급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2024.04.12. 사진공동취재단 |
이에 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은 환율 변동성이 과도하다며 적극적인 개입 의지를 드러내고 나섰다. 또 미국의 금리 인하 지연 전망이 환율에 주는 영향은 금리를 올리던 때인 2022년 중반과 비교해 길게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총재는 17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춘계 회의 계기에 열린 대담에서 “우리 환율이 시장 기초에 의해 용인될 수 있는 수준에서 약간 벗어났다”며 강달러 기조가 일시적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수주간 환율에 영향을 끼친 여러 외부요인이 있었다면서 원/달러 환율 급등에 미국의 통화정책, 지정학적 긴장, 이웃국가인 중국의 위안화와 일본 엔화의 영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날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이 총재는 원/달러 환율 급등과 관련해 “시장 펀더멘털을 고려할 때 최근의 변동성은 다소 과도하다”며 “환율 변동성이 계속될 경우 우리는 시장 안정화 조치에 나설 준비가 돼 있으며, 그렇게 할 충분한 수단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 상황에 따라 환율 방어를 위한 시장 개입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적극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이 총재는 이날 대담에서 현재의 외환시장 환경이 미국 고금리가 지속되리라는 예상에 따라 달러 가치가 견고하게 올라갔던 2022년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달러 강세는 이르면 6월부터로 예상됐던 연준의 금리인하 시기가 뒤로 늦춰질 수 있다는 예상에 기인했지만, 그 여파는 비교적 일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미국 통화정책 변화가 신흥 시장의 환율에 주는 영향은 1년 반 전에 비해 일시적일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