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서경수 [오디컴퍼니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매일 행복의 너비가 넓어지고 있어요. 너무나 행복해서 여한이 없다는 말이 이해가 될 정도예요.”
“말주변도 없고, 나에 대해 별로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아” 인터뷰도 잘 하지 않는다던 배우 서경수가 이번엔 모처럼 용기를 냈다. 뮤지컬 ‘일 테노레’를 만나면서다.
조선 최초의 테너 이인선(극중 윤이선)과 독립운동가들의 빛나는 삶의 장면들을 담은 ‘일 테노레’는 지난해 개막, 모처럼 관객들을 찾은 대형 제작사의 창작 뮤지컬이다. 서경수와 함께 ‘뮤지컬 스타’ 홍광호·박은태가 트리플 캐스트로 이름을 올려 윤이선을 연기한다.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아름다운 선율로 빚어낸 대중적인 음악, 배우들의 흠 잡을 데 없는 연기와 노래가 ‘일 테노레’의 초연을 성공가도에 올렸다.
앙코르 공연에 한창인 서경수는 “‘일 테노레’를 통해 하루하루 발전해나가고 있고,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 노력에 응답을 받고 싶기도 하다”고 솔직한 이야기를 건넸다.
서경수에게 ‘일 테노레’와의 첫 만남이 마냥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성악가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보니 도전 정신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그는 “오디션 제안을 받았을 때 성악을 따로 한 적이 없어 흉내만 내다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며 “너무나 하고 싶었지만, 잘 해 낼 자신이 없었다”고 돌아봤다.
뮤지컬 배우 서경수 [오디컴퍼니 제공] |
“성악을 배우는 학도와 연기를 동시에 해야하는 임무를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욕먹을까 두렵기도 했는데, 오히려 발전의 기회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스쳤어요.”
선택의 결과는 옳았다. 첫 연습 때부터 서경수는 운명처럼 윤이선을 품었다. 그는 “노래 연습을 먼저 하고 리딩을 했는데 너무 와닿아서 졸도할 뻔했다”며 “음악은 현이 많아서 그런지 리듬보다 선율이 먼저 심장을 강타했다. 이 모든 이야기와 음악이 너무나 따뜻했고 뜨거웠고 아팠다”고 말했다.
때론 객관적 시선으로 작품을 면밀히 분석해야 했지만, 작품을 만난 뒤 찾아온 감정들은 배우가 아닌 인간 서경수의 온 삶을 흔들었다. “이렇게 울컥하고 너무 젖어버리면 안되는데, 심장이 젖어버려 너무나 행복했어요. 드라마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과 직결돼 있는데, 사실 지금의 우리와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 테노레’를 통해 서경수는 마침내 ‘현실 캐릭터’에 발을 붙였다. 그간 ‘킹키부츠’, ‘데스노트’, ‘위키드’, ‘썸씽로튼’ 등을 통해 캐릭터성이 강하면서도 재기발랄하고, 공연 곳곳에 녹아드는 유연하고 뻔뻔한 연기가 특장점으로 발휘됐던 서경수는 모처럼 평범(?)한 한 인물의 생을 그려간다. 청년 윤이선부터 노년의 윤이선까지다.
서경수는 “이 작품은 워낙 이야기가 탄탄해서 인물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다”며 “작품에 몸을 담그면 심장이 저절로 움직였다. 내 안에 있는 윤이선을 꺼내 최대한 진실하게 연기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노력의 크기로 보자면 둘째 가라면 서운하나, 결과에도 자신만만한 것은 아니다. “만족하지 않아요. 만족하는 순간 하강 곡선을 그리더라고요. (웃음) 아프더라도 채찍질을 해야죠.”
뮤지컬 배우 서경수 [오디컴퍼니 제공] |
2006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앙상블로 데뷔한 서경수는 무대에서 기반을 닦아 대극장 주연까지 착실히 올랐다. 소극장 작품에 서는 배우들이 무대를 TV나 영화로 이동하는 발판으로 삼는 때에 서경수는 오랜 시간 충실하게 무대에서 갈고 닦아 무대에서 티켓 파워를 갖춘 배우로 성장했다. 하지만 먼 길을 오기까지 슬럼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간에 그만두려 했던 때도 있었고, 허무하고 허탈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그 마음을 먹자, 되니 내가 얼마나 뮤지컬을 사랑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슬럼프의 원인은 서경수 자신에게 있었다고 한다. 그는 “제 삶의 문제가 아니었고, 무대 위에서 표현해야 하는 몫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 슬럼프가 찾아왔다”며 “야구선수가 제구가 안 되고 시속이 안 나오는 것처럼 노래를 시원하게 뻗어야 하는데 잘 되지 않았던 때였다”고 돌아봤다.
그 무렵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봤다.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연습 외엔 없었다. ‘노력의 기준치’를 높여 문제를 해결하자, 그는 “그 때야 내가 오만했다는 것을 알 게 됐다”고 말했다.
‘일 테노레’는 배우 서경수를 끊임없이 단련하고 성장하게 하는 작품이다. 그는 “‘일 테노레’를 만나 무대를 더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매순간 진심으로 무대에 오르는 서경수의 바람과 꿈은 멀리 있지 않다.
“때론 무대에서 이기적인 사람을 만날 때도 있어요. 관객은 알 수 없지만, 동료를 외롭게 하는 사람들이 있죠. 제 옆의 그들을 외롭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야 진실한 배우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무대의 이 모습을 관객들에게 진짜의 순간으로 전하고 싶고, 동료들이 함께 하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