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시상식으로 K-팝의 얼굴인 아티스트들이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할 수밖에 없어 건강 문제는 물론, 불법 상황에도 노출돼 ‘법률 리스크’까지 커지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시상식을 통합하거나 윤번제로 시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시상식 횟수를 대폭 줄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9일 대중음악계 등에 따르면 K-팝 시상식이 너무 많아 가수와 음반 제작자가 힘들어진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공론화되기는 쉽지 않았다. 시상식 주최사에 비해 ‘을(乙)’의 위치에 있는 음악제작자들이 특정 K-팝 시상식 자체를 반대하거나 참가를 거부한다면 미운 털이 박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일부 K-팝 시상식이 매니지먼트업체에 참가를 강요하고, 시상식의 공정성과 객관성도 지켜지지 않자 한국음악콘텐츠협회(음콘협)를 중심으로 문제 제기가 시작됐다. 실제로 음콘협은 최근 “우리는 시상식 행사의 개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무분별하게 개최되는 K-팝 시상식을 반대한다”는 성명문을 내기도 했다.
최근 K-팝 시장이 글로벌로 확대되면서 유명 아티스트, 특히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인기 아티스트는 향후 1~2년 이후까지 스케줄이 빽빽하게 예정돼 있다. 하지만 잦은 K-팝 시상식 참석이 강요되면서 무대 준비 등 무리한 스케줄로 아티스트의 건강마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 음콘협의 설명이다.
실제로 시상식마다 아티스트에게 요구하는 무대가 있고, 공연 무대를 위해 노래 구성, 안무 연습 등으로 2~3일의 밤샘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아티스트의 육체적·정신적 건강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시상식이 해외에서 개최될 경우 장거리 이동에서 오는 여러 가지 위험 요인이 더해지게 된다.
심지어 19세 미만 미성년자가 다수 포함된 아이돌 그룹은 시상식 참여와 준비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상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용역제공 시간(주 35~40시간)을 초과할 수밖에 없어 불법적인 상황에 노출될 수도 있다.
K-팝 시상식의 난립과 이로 인한 질적 저하로 인해 K-팝 전반적인 이미지도 훼손되고 있다. 수익성을 우선 순위에 두다 보니 낮은 품질의 연출과 음향으로 관객들에게 실망감을 안기는 일이 반복되고, 주최 측이 아티스트의 추락 사고나 관객들의 현장 안전 관리에도 소홀히 하는 등 무대 안팎에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음악 제작 매니지먼트사의 사업적 부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과도한 시상식 출연 요청 탓에 아티스트의 해외 투어와 행사 출연에 제한이 생겨 막대한 기회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에서 열리는 시상식은 아티스트의 일정을 최소 3~4일 빼야 하는데, 최근 시상식이 해외에서 개최되는 트렌드라 기회 손실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 음반제작자는 “1년에 돈을 벌 수 있는 주(週)가 52개 있는데, 10개 이상의 시상식에 참가하면 돈을 못 버는 주가 10주 이상이 되는 셈”이라고 털어놨다.
이 밖에 시상식 주최사와 매니지먼트사가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못하거나, 서면 계약조차 체결하지 않은 채 시상식에 출연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무리한 스케줄을 감행한 매니지먼트사에 책임이 전가된다. 결국 매니지먼트사는 아티스트와 법적 분쟁 가능성까지 감수하고 시상식에 참여해야 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K-팝이 전세계로 더욱 뻗어나가면서 지속 발전하려면 아티스트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우후죽순 개최되고 있는 K-팝 시상식이 아티스트의 참여 강행을 유도하고 있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따라서 시상식 횟수를 K-팝 발전과 시너지를 이룰 수 있는 적정한 선으로 축소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대중음악계 관계자는 “통합 시상식이나 윤번제 등을 통해 K-팝 시상식 숫자를 대폭 줄이고, 음악 제작 매니지먼트사들과 상생할 수 있는 ‘클린 시상식’이 개최될 수 있도록 현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병기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