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과일을 고르는 시민의 모습 [연합] |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농축산물 중심으로 먹거리 물가가 잡하지 않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이례적으로 연일 수입 개방을 언급해 눈길을 끌고 있다. 기준금리 등의 통화정책으로는 현재의 먹거리 물가를 잡을 수 없는데다, 지금과 같은 정책으로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한은의 소신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19일 한은에 따르면 전날 발표된 ‘대미국 수출구조 변화 평가와 전망’ 보고서에는 “에너지농축산물 등에서 미국으로의 수입 다변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통상압력 완화뿐 아니라 공급선 다변화를 통한 에너지·먹거리 안보 확보와 중기적 시계에서 국내 물가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약 일주일 사이 한은의 입에서 두 차례나 농축산물 수입 개방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2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 방향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농산물 등 물가 수준이 높은 것은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며 “지금과 같은 정책을 계속할지, 농산물 수입을 통해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농축수산물은 우리나라 물가에 지속적인 부담으로 작용했다. 시계를 2년으로 돌리면 이해가 쉽다.
2021년 소비자물가지수는 102.50(2020년=100)으로 작년보다 2.5% 상승했다. 농축수산물 영향이 매우 컸다. 농축수산물은 당시 8.7% 올라 2011년(9.2%)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달걀(41.3%), 파(38.4%), 사과(18.5%), 돼지고기(11.1%), 국산쇠고기(8.9%) 등의 오름폭이 컸다.
농축수산물 물가는 기본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기후, 병충해 등 자연적 요건으로 인한 작황부진에 따라 매우 큰 폭으로 좌우된다. 지정학적으로 위험을 분산하지 않으면 해당 물가는 계속 변동성이 커진 채 유지될 수 있다.
최근 과일류 중심의 폭등도 그렇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94(2020년=100)로 작년 같은 달보다 3.1% 올랐다.
물가 오름세를 이끈 품목은 이번에도 농산물, 그 중에서도 과일류였다. 축산물(2.1%)과 수산물(1.7%)은 소폭 오르는 데 그쳤지만, 농산물이 20.5% 뛰었다. 전월(20.9%)에 이어 두 달 연속 20%대 상승 폭이다. 이에 따라 농축수산물은 2021년 4월(13.2%) 이후로 2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11.7% 상승률을 기록했다.
과거와 같이 작황 부진이 원인이다. 단일 품목으로는 사과가 작년 동월 대비 88.2% 상승해 전월(71.0%)보다 오름폭을 키웠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0년 1월 이후 역대 최대 상승 폭이다. 배도 87.8% 올라 조사가 시작된 1975년 1월 이후 역대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귤(68.4%) 등도 크게 뛰면서 과실 물가지수는 40.3% 올랐다. 2월(40.6%)에 이어 두 달째 40%대 상승률이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이 곤혹스러운 점은 사과 등 농산물 가격이 높은 것은 기후변화 등이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농산물이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8%인데, 최근 2∼3개월 동안 우리 CPI 오른 것의 30% 정도가 농산물의 영향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과실이 CPI 비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지만, 과실 가격 상승이 최근 CPI 오른 것의 19% 정도다”며 “기후변화로 작황이 변했는데 재배면적 늘리고 재정을 쓴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