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에 불어온 ‘AI열풍’…대형로펌들 서비스개발 경쟁 치열

[대륙아주 제공]

[헤럴드경제=윤호 기자]보수적인 법률 분야에서 인공지능(AI)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변호사가 맡던 기존 업무 중 상당 부분을 AI가 대체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국내 대형 로펌들이 앞다퉈 관련조직을 꾸리고 서비스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 가장 눈에 띄는 결과물을 내놓은 곳은 법무법인 대륙아주다. 대륙아주와 리걸테크 스타트업 넥서스AI가 공동 개발한 인공지능(AI) 챗봇 ‘AI대륙아주’는 네이버의 거대언어모델(LLM)인 하이퍼클로바X를 활용, 그간 회사에서 축적한 법률 데이터를 기반으로 1만여개의 질문과 모범답안을 학습해 답변을 제공한다.

지난달 열린 시연회에서 ‘대여금을 받지 못한 경우 형사 고소와 민사소송 중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20초도 지나지 않아 답이 나왔다. ‘사기죄 등 범죄가 아니면 민사소송을 제기해 대여금 반환 청구를 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내용이었다. 곧바로 ‘원래부터 돈을 갚지 않을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묻자, ‘형법상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경찰에 신고해 형사 고소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는 답변이 나왔다. 이런 식으로 5개 질문까지는 연속으로 대답할 수 있게 설계됐다. 현재 질문 100개를 하면 88개를 정확히 답변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법무법인 세종은 지난해 AI로 의견서와 소장 등 법률문서를 분류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데 이어 올해 AI가 이끌어 갈 미래 법률서비스 시장 선점을 위해 ‘AI·데이터 정책센터’를 발족했다. AI·데이터를 기반으로 제품 또는 서비스 출시를 계획하거나 이미 자사 제품과 서비스에 AI·데이터 기술을 활용하고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도입 단계부터 운영, 관리(평가), 개선에 이르는 AI·데이터 전주기 프로세스별로 발생 가능한 법률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맞춤형 자문을 제공할 계획이다.

초대 공동 센터장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역임한 윤종인 고문과 미래창조과학부 2차관을 지낸 최재유 고문이 맡았다. 쿠팡에서 정보보호법무책임자(CPC) 및 개인정보보호책임자(CPO)를 거친 장준영 파트너변호사도 합류했다.

법무법인 광장은 이달 국내 최대규모인 100여 명의 전문 변호사와 규제기관 출신 전문가들로 구성된 ‘테크 앤 AI(Tech & AI)팀’을 발족했다. 이 팀은 법령해석, 규제당국 설득, 입법 컨설팅 지원, 검사·제재 대응에 이르기까지 AI와 신기술을 활용한 융복합 서비스의 모든 단계에 원스톱(One-Stop)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

팀장은 AI전략최고위협의회의 법·제도 분과위원장으로 데이터·디지털 금융 분야 자문업무를 수행한 고환경 변호사가 맡았다. 삼성전자 법무실 출신의 채성희 변호사와 과기부 고문변호사로 활동 중인 김태주 변호사도 팀에 참여한다.

법무법인 율촌은 설립 이후 27년간 축적한 법률 데이터를 활용해 AI로 소송과 자문의 기초자료를 검색하고 서류 작성까지 가능한 시스템을 하반기 도입하기로 했다. 변호사가 변론 자료를 요청하면 AI가 10초 이내에 관련 법 조항과 최신 판결 동향 등을 정리해 제공하고, 자문 업무에서도 법률 정보와 의견서·제안서·계약서 등을 신속하게 찾아 초안 작성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율촌 관계자에 따르면 개발 중인 AI 성능은 1·2년 차 변호사들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한다.

대형 로펌의 AI 개발 경쟁은 기존 전략만으로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종합 로펌으로서 어느 정도 단계에 도달하면 변호사 확충이 매출 증대로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광장은 지난해 매출 역성장(-1.1%)을 기록했고, 태평양은 1.6% 성장하는 데 그쳤다.

다만 본격적인 AI 변호사 도입을 위해선 정부 규제와 변호사단체의 반발 등을 해결해야 한다. 법무부는 지난해 리걸테크 관련 제도개선특별위원회를 발족했지만, ‘할루시네이션’(환각·그럴싸한 거짓말) 문제를 풀기 위한 하급심 판결문 전면공개 등 업계 요구에 대한 논의는 더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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