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 [로이터] |
[헤럴드경제=박세환 기자]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이 29~30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을 예정인 가운데 이번 방문이 가자지구 전쟁 이후 멈춰선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협상의 물꼬를 틀지 주목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이래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수교를 성사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이들 국가의 수교를 통해 중동지역의 안정화를 꾀하는 동시에 이를 자신의 외교적 성과로 부각하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사우디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해결을 수교 조건의 하나로 내걸었고, 지난해 10월 7일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하자 관련 협상의 전면 중단을 결정했다.
블링컨 장관의 이번 사우디 방문은 협상 교착이 7개월 가까이 이어진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여부를 가를 미국 대선을 6개월가량 남겨둔 시점에 이뤄지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가능하다면 이들 국가의 수교 협상을 대선 전 타결하거나 적어도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리더십을 부각할 수 있는 수준의 궤도에 올려놓고 싶은 바람일 수 있는 셈이다.
다만 문제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라는 사우디의 입장이 가자지구 전쟁 이후 더욱 강경해졌다는 점이다.
리마 빈트 반다르 알사우드 주미 사우디 대사는 1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자국과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는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을 향한 ‘불가역적인’ 방안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2월에는 백악관이 언론 브리핑을 통해 수교 협상에 대한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며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하자 사우디가 이를 즉각 반박하는 입장문을 낸 적도 있다.
사우디는 당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인정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략 중단 없이는 이스라엘과 수교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들 국가의 수교 문제는 결국 가자 휴전 협상과도 긴밀히 연동될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단 가자 휴전으로 시간을 벌어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 등을 논의할 여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현재 진행 중인 휴전 협상이 결렬되고 이스라엘군이 예고대로 민간인이 대거 몰려있는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 지상전을 강행한다면 중동 정세가 또다시 요동치면서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협상의 공간도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 같은 맥락에서 AFP통신은 획기적이지만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평가되는 협상의 시한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블링컨 장관이 사우디를 방문한다고 주목했다.
사우디-이스라엘 관계의 전문가인 아지즈 알가시안은 가자지구 전쟁 국면에서 “수교의 대가는 확실히 올라갔다”며 사우디가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 “단순한 약속이 아닌 보다 명확하고 되돌릴 수 없는 조처를 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다고 AFP에 설명했다.
돌파구는 블링컨 장관이 팔레스타인의 독립국 수립을 향한 미국의 비전을 사우디에 설득할 수 있을지에 달린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국무부는 27일 블링컨 장관의 사우디 방문 일정을 발표하며 가자 휴전과 인질 석방, 인도주의적 지원 확대 등과 함께 “독립된 팔레스타인 국가로 가는 길을 포함해 역내 지속적인 평화와 안보를 달성하기 위해 진행 중인 노력들”을 의제로 언급했다.
이는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문제가 논의 테이블에 오를 것이란 점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