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로 인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사거리 인근 도로가 침수돼 차들이 거북이 운행을 하고 있다.[연합] |
[헤럴드경제=이용경 기자] 역대급 장기간 가뭄과 3월의 때 이른 고온 현상, 가을에 접어드는 9월의 극심한 기온 변동 등이 모두 ‘이상기후’에 해당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긴 가뭄 이후 폭우 피해가 발생한 기상현상과, 예년 대비 역대급으로 기록된 ‘극한호우’ 역시 기상청 등 정부가 확인한 이상기후로 기록되게 됐다.
기상청은 29일 국무조정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와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등 12개 부처 25개 기관과 합동으로 ‘2023년 이상기후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이번 보고서에는 지난해 발생한 ▷이상고온 ▷가뭄 ▷집중호우 ▷매우 큰 기온 변동 폭 등 이상기후 발생 내용이 수록됐다. 특히 농업·해양수산·산림·환경·건강·국토교통·산업에너지·재난안전 등 총 8개 분야에서의 피해 현황이 담겼다. 또한 ‘이상기온’의 정의와 특성, 산출 방법, 기후변화의 원인 규명과 관련된 국내·외 연구 사례도 포함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2022년부터 이어졌던 남부지방의 긴 가뭄이 해소된 후 곧바로 발생한 여름철 집중호우와 3월의 때 이른 고온 현상, 9월의 때늦은 고온 현상과 극심한 기온변동폭 등 양극화된 날씨의 특징을 보였다.
특히 남부지방의 기상가뭄 발생일수는 227.3일로 나타났는데, 이는 전국적인 기상관측망이 구축된 1973년 이후로 역대 가장 오래 가뭄이 지속됐던 때로 기록됐다. 전국 기상가뭄 발생일수도 156.8일로 집계돼 168.2일을 기록했던 2015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남부지방의 경우 긴 기상가뭄이 4월에 대부분 해소됐지만, 5월 초와 말에 이르러 호우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남부지방의 가뭄이 해소된 직후인 5월의 강수량은 191.3㎜로, 79.3~125.5㎜로 집계된 평년보다 많은 역대 3위를 기록했다.
여름철 집중호우도 심각했다. 이때 장마철 강수량은 전국 660.2㎜로 평년(356.7㎜) 대비 증가했고, 전국적인 기상관측망이 갖춰진 1973년 이래 3위를 기록했다. 장마철 강수일수도 22.1일로 나타나 평년(17.3일) 대비 28%나 증가했다.
지역으로 보면, 남부지방의 장마철 누적 강수량이 712.3㎜로 역대 1위를 기록했다. 특히 7월 중순에는 정체전선이 충청 이남 지역에 장기간 정체하면서 남부지방에 많은 비가 내렸다.
이상고온 현상은 때 이른 3월과 때늦은 9월에도 각각 나타났다. 3월의 전국 평균기온은 9.4도로 평년(6.1도) 대비 3.3도 높았고, 9월 역시 22.6도로 나타나 모두 1973년 이후 역대 1위를 기록했다. 특히 서울에는 88년 만에 9월 열대야가 발생하는 등 초가을 늦더위도 나타났다.
기온변동폭도 극심해 11월과 12월은 각각 상순에 기온이 크게 올랐지만, 중순부터 기온이 크게 떨어져 기온 변동이 큰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됐다. 11월에 전국 일평균 기온이 가장 높았던 날과 가장 낮았던 날의 기온 차는 19.8도로 나타났으며, 12월의 기온 차도 20.6 도로 1973년 이래로 가장 컸다.
이상기후로 인해 사회 각 분야에서 발생한 사회·경제적 피해도 막심했다. 봄철 건조 현상으로 인한 산불 피해와 남부지방에 지속된 가뭄으로, 지역민 용수 부족 현상 등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산불 발생 건수는 596건으로 10년 평균(537건) 대비 1.1배 이상 증가했고, 피해 면적은 4991.94 ha로 10년 평균(3559.25 ha) 대비 1.4배나 증가했다.
광주와 전남 등 남부지방에는 역대 최장기간 가뭄 상황이 지속돼 수어댐을 제외한 주요 댐의 저수율이 26~36%로 예년의 54~71% 수준에 불과했다. 가뭄 기간에 전남에서 발생한 제한급수, 운반급수 및 제한운반급수 건수가 85건으로, 2009년(26건) 대비 약 3배에 달하는 등 도서지역에는 용수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여름철 집중호우 현상은 총 53명(사망 50명, 실종 3명)의 인명피해와 8071억 원의 재산 피해를 발생시켰다. 폭염과 이상고온 현상은 온열질환자 폭증과 해양과 산림 분야에서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자의 수는 2818명으로, 2022년(1564명) 대비 급격히 증가했다.
해양 분야에서는 해수면 온도와 해수면 높이가 높게 나타났다. 한국 주변 해역의 관측값 기반 해수면온도(17.5 도)는 최근 10년(2014~2023년)간 2021년(17.7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고, 해수면 역시 2023년 9월 동해, 황해, 동중국해 모두 1993년 이래 매년 9월 중 가장 높은 해수면을 기록했다.
특히 여름철 폭염에 따른 연안역 고수온 현상이 9월 중순까지 지속되면서 서해 연안을 제외한 대부분의 해역에서는 약 438억 원의 피해액에 달하는 양식생물의 대량 폐사 피해를 입었다.
산림 분야에서는 한국 최초로 식물계절 관측을 시작한 홍릉시험림 내 66종의 평균 개화 시기가 50년 전(1968~1975년) 대비 14일, 2017년 대비 8일 빨라졌다. 2~4월 평균기온도 평년 대비 높아 모감주나무, 가침박달, 회양목 등 개화 시기가 20일 이상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