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장의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정체기)’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배터리 1위 기업인 중국 CATL의 실적 순항이 이어지고 있다. K-배터리 3인방(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의 1분기 실적에 빨간불이 켜진 것과 대조적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CATL은 전년 동기 대비 약 7% 증가한 105억 위안(약 2조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 넘게 줄었지만, 압도적인 순이익으로 경쟁사를 제쳤다.
CATL은 1분기 명절 연휴로 인한 계절적 비수기 등에도 불구하고 호실적을 기록했다. 올해 시장 전망도 경쟁사와 비교해 밝은 편이다. 블룸버그 컨센서스(전망치)에 따르면 CATL은 올해는 전년 대비 매출 6%, 영업이익 25% 증가가 각각 예상된다. 저렴한 가격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시장에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고, 거대한 자국 시장의 뒷받침도 이어질 공산이 크다.
최근 들어서는 유럽 등 자국 외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 CATL은 올해 1~2월 중국을 제외한 배터리 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을 제치고, 26.3%의 점유율로 전체 1위에 올랐다. 지난해만 해도 LG에너지솔루션이 27.8%로 비중국 시장에서는 1위를 기록했으나, 올해 들어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반면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분기 매출 6조1287억원, 영업이익 1573억원을 기록하면서 실적이 대폭 꺾였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9.9%, 75.2% 줄었다.
이번 영업이익에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가운데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 혜택 금액(1889억원)이 반영됐는데, 이를 제외할 경우 영업손실 316억원으로 오히려 적자 전환한 셈이다.
삼성SDI와 SK온도 실적 감소가 예상된다. 여의도 증권가 컨센서스에 따르면 삼성SDI는 올해 1분기 매출 5조1911억원, 영업이익 2281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매출은 3%, 영업이익은 39.3% 감소한 수치다. 경쟁사와 비교하면 비교적 양호한 실적이지만, 하락세는 피하지 못했다.
SK온은 1분기 적자 확대가 예상된다. 경쟁사 대비 고객사 재고조정 효과가 올해 1분기에 집중됐고, 미국 출하량 감소로 AMPC 효과도 감소하면서다. 대신증권은 SK온이 올해 1분기 매출 1조8330억원, 영업손실 4195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봤다.
SK온은 지난해 분기를 거듭할수록 적자 폭을 줄이면서 올해 흑자전환이 기대됐지만, 전기차 성장세 둔화로 손실 폭이 다시 확대되는 등 암초를 만났다.
한편 국내 배터리 업계는 실적 둔화에도 불구하고 CATL과의 장기전에 대응하기 위한 카드로 전고체 전지를 비롯해 차세대 배터리 연구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고체 배터리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힘을 쏟는 한편, 테슬라가 차세대 배터리로 지목한 ‘46시리즈 양산’을 올 하반기 시작한다. 독자 개발한 에너지저장장치(ESS) 전용 LFP 생산에 나서는 등 라인업 다변화에도 힘을 쏟는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서 우위를 가져가는 동시에 초급속 충전·초장수명 배터리 개발에 집중한다. 충전 9분 만에 80%까지 끌어올리는 급속 충전 기술을 2026년에 선보이고, 20년간 사용 가능한 초장수명 배터리 기술을 2029년 양산한다는 목표다.
SK온은 올해 코발트-프리, 각형, 전고체 등 배터리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본격 나선다. 강점을 갖고 있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는 주행거리를 2026년 700㎞, 2030년 800㎞ 이상으로 향상한다. 값비싼 코발트를 제외한 코발트-프리, LFP 제품으로 저가 라인업도 구축한다. 김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