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 [마스트미디어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냉철한 분석, 오차 없는 정밀한 테크닉, 흔들림 없는 보잉이 만들어내는 선명한 선율….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45)에겐 ‘완벽주의’라는 수사가 가장 먼저 따라온다. 12세에 데뷔해 천재적 재능을 보여온 그의 별칭은 ‘얼음 공주’. 냉정하고 엄격한 연주 스타일 덕분에 이런 별명도 생겼다. 흠 잡을 데 없는 연주로 세상은 그를 ‘완벽주의자’로 보지만, 사실 힐러리 한 본인은 자신을 ‘본능에 충실한 연주자’라고 말한다.
힐러리 한은 내한을 앞두고 가진 헤럴드경제와 서면 인터뷰에서 “루틴, 습관, 강박은 물론 완벽주의 또한 내겐 없다”며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창의적인 사고를 가지게 하는 데 방해 요소가 될 뿐”이라고 말했다.
“전 연주자로서의 저를 잘 알고 있고, 저의 본능을 신뢰해요. 무언가를 개선해야 한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무대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것 또한 주저하지 않죠. 두려움을 피하기보단, 제 흥미에 따라 나아가는 사람이에요.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어요.”
그를 완벽하게 만드는 것은 성실함이다. 단 하루도 빼놓지 않은, 꾸준한 연습이 지금의 그를 완성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유하고 있는 #100데이즈오브프랙티스(#100daysofpractice)를 통해 힐러리 한의 일상을 만날 수 있다.
힐러리 한은 “#100daysofpractice는 사실 챌린지가 아닌데, 보는 사람들은 챌리지이길 원했던 것 같다”며 “100일 연속 연습이 가능한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100일 내내 연습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늘 연습하며 살고 있는 한 연주자의 100일이라는 시간을, 공연을 하거나 작업하는 것을 뽐내기 위함이 아니라 작업을 하고 있는 과정을 나누기 위한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 [마스트미디어 제공] |
힐러리 한의 이 프로젝트는 불현듯 찾아온 아이디어로 시작하게 됐다. 그는 “처음엔 모두가 지루해 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많은 연결고리를 만들게 됐다”며 “댓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연습에 대해 가진 압박과 금기, 비인간적 기대치를 짐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사실 연주자들이 자신의 연습 과정을 공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무대 뒤의 인고를 거쳐 무대 위에서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음악가들이 자신의 실수까지 공유하는 과정은 흔치 않다.
“연습을 하지 않을 때 그 과정을 언급하지 않는 것을 관례라 생각했고, 연습에 대한 언급을 부끄러워하기도 했어요. 연습은 비상사태나 극한의 위기, 생존에 대한 것은 아니에요. 그렇게 될 수도 없고요. 제게 이 프로젝트는 음악가로의 삶을 살아가며 어느 시점의 100일에서든 회복을 위한 과정을 찾는 것이었어요.”
지난해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로 한국을 찾았던 힐러리 한은 이번 내한(5월 11일, 예술의전당)에선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들려준다. 한은 “지난 몇 년간 연주해온 현대 음악, 함께 작업해온 현대 작곡가와의 경험 이후 조금은 변화가 있었다”며 “변화들을 스스로 믿게 된 순간, 수없이 반복해왔거나 내적 친밀도가 높은 작품의 해석에 영향을 줬고, 마음도 더 편안해졌다. 브람스 소나타와 같은 작품이다”라고 귀띔했다.
안드레아스 해플리거 [마스트미디어 제공] |
이번 내한에서도 한은 피아니스트 안드레아스 해플리거(62)와 함께한다. 해플리거는 임윤찬이 우승한 2022년 제16회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심사위원이었다. 그는 “밴 클라이번에서 본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무대 중 제가 가장 좋아한 작품은 베토벤 (협주곡) 3번이었다”며 “연주 자체가 매우 음악적이면서 본인의 개성이 뚜렷했는데, 억지로 꾸밈이 없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어린 나이에 그 정도의 능숙한 연주를 한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고 회상했다.
오랜 시간 함께 해온 한과 해플리거는 ‘이상적인 듀오’의 대명사다. 해플리거는 “서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서로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며 “이 점이 완벽한 앙상블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한 역시 “우린 서로 매우 다른 아티스트지만, 전통성과 새로움의 균형에 대해서는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가 가진 솔로, 실내악 음악의 개별적인 경험과 레퍼토리에 대한 공통된 관심이 좋은 호흡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듀오 무대에선 바이올린만으로는 특정 해석을 끌고 나가기 어렵고, 전 주도권을 가지고 싶지도 않아요. 그건 얼음 위에서 한 개의 바퀴만을 가진 자동차로 달리는 것과 같아요. 듀오는 함께 아이디어를 가지고 거침없이 어느 방향으로든 나아갈 수 있어야 해요. 각자가 자유로워야 하며, 서로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야 하죠. 그것이 제가 지향하는 듀오로서 상호작용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