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관련 정부 회의체 ‘회의록’ 작성 의무 여부를 둘러싼 의정 간 공방으로 번진 가운데 서울 시내 한 대형 병원에서 의료진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 ‘회의록’ 공방으로 번졌다. 보건복지부는 의대 증원 결정 근거가 될 회의록 자료 제출을 약속한 반면 교육부는 회의록 작성 자체에 법적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의료계는 이들이 공공기관으로서의 직무를 유기했다며 즉각 고발하는 등 반발에 나섰다.
8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이 오는 10일까지 의대 증원 결정 과정의 근거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청하면서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는 각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앞서 의료계는 복지부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의대 증원 정책 효력을 멈춰 달라는 집행정지 신청 소송을 냈다. 법원은 이들 자료를 검토해 이르면 이달 중순 항고심 결정을 내릴 계획이다.
두 부처 입장은 엇갈린 상태다. 복지부는 앞서 2000명 증원 규모를 결정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와 보정심 산하 ‘의사인력전문위원회’ 회의록이 있는지 여부를 두고 번복을 거듭하다 전날 “회의록을 작성·보관하고 있다”면서 회의록을 법원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교육부는 의대 증원분의 대학별 배분을 결정한 ‘배정위원회(배정위)’ 회의록 제출 여부를 밝힐 수 없다면서도, 해당 회의록은 ‘요약본’으로만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배정위원회는 ‘비법정위원회’, 즉 법에 근거를 둔 회의체가 아니기 때문에 희의록 작성할 법적 의무도 없다는 설명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첨단, 보건 등 정원 관련 위원회는 비법정위원회로 별도의 회의록 작성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복지부 역시 대한의사협회가 함께 한 의료현안협의체는 법적 협의체가 아니라 양측 협의 하에 녹취와 속기록을 작성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정근영 전 분당차병원 전공의 대표(왼쪽 네번째)를 비롯한 사직 전공의와 이들의 법률대리인 이병철 변호사가 7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박민수 차관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기 전 피케팅을 하고 있다. [연합] |
의료계는 즉각 공세에 나섰다. 이들 주장은 회의록 작성 의무가 없다는 정부 입장이 현행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공공물기록관리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공공기록물관리법 시행령 제18조는 ‘주요 정책의 심의 또는 의견 조정을 목적으로 차관급 이상 주요 직위자를 구성원으로 운영하는 회의’, ‘회의록의 작성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주요 회의’ 등 공공기관 회의에 대해 회의록을 작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보정심은 해당 법의 적용 대상이고, 배정위는 그렇지 않다는 게 각각 복지부와 교육부 입장이다.
의대 증원 소송을 대리하는 이병철 법무법인 찬종 변호사는 전날 복지부 장·차관, 교육부 장·차관 등을 공공기록물폐기, 직무유기 등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전의교협도 성명을 내고 “배정위 위원에 차관급 이상이 참여하지 않았다 해도 공공기록물법 시행령의 ‘회의록의 작성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주요 회의’에 해당한다”며 “교육부 입장은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각 부처가 제출한 자료를 검토해 이르면 다음주 항고심 결정을 낼 예정이다. 법원은 또 결정 전까지 각 대학이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의대 증원을 반영해 제출한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승인하지 말라고도 요청했다. 만약 법원이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승인할 경우 각 의대는 증원 없이 올해와 같은 규모로 신입생을 선발하게 된다. 앞서 전국 39개 의대(차의과대 제외)는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올해 대비 1469명 늘어난 4487명으로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