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정수 vs 파격적 도전…같은 작품, 다른 시선 ‘로미오와 줄리엣’

매튜 본 ‘로미오와 줄리엣’ [LG아트센터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고전 vs 파격’

하나의 이야기가 완전히 다른 두 편의 무용으로 태어났다. ‘고전의 정수’를 보여줄 발레 버전과 파격적으로 재해석한 현대무용 버전으로다. 수 백년 동안 변주를 이어온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을 마주할 때다.

발레로 ‘고전의 정수’ 보여준다

1965년 초연한 케네스 맥밀란(1929~1992)의 드라마 발레가 2024년 한국에서 막을 올린다. 이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전설적인 무용수’로 꼽히는 마고 폰테인과 루돌프 누레예프가 초연으로 관객과 만났고, 2012년 유니버설 발레단이 공연권을 가져와 2016년 한국 관객과 만났다. 이번 공연은 무려 8년만이다.

유니버설 발레단이 창단 40주년을 맞아 오는 10일부터 막을 올릴 ‘로미오와 줄리엣’(5월 12일까지, 예술의전당)에는 지난해 ‘브누아 드 라 당스’를 받은 강미선, 한국인 최초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수석무용수 서희, 유니버설 발레단의 신예 이유림이 줄리엣을 맡았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원전에 충실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프로코피예프의 음악 안에 인물들의 내면을 녹여냈다. 순수한 열네 살 소녀 줄리엣이 사랑과 이별을 겪으며 성장하는 모습이 이 작품의 핵심 키워드다.

유니버설발레단 창단 40주년 기념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무용수 강미선(왼쪽부터), 서희, 이유림. [연합]

11년 만에 한국 무대에 서는 서희는 “2009년 처음 줄리엣을 맡은 이후 15년 동안 공연을 하면서 이 역할에 대해 많은 경험을 쌓았다”며 “오랜만에 줄리엣을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서희는 2005년 ABT에 입단, 4년 뒤 줄리엣으로 발탁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데뷔했다. 국내에서 줄리엣을 연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처음 줄리엣을 했을 땐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하면 할수록 질문이 많아지는 역할”이라며 “내가 생각했던 것을 잘 전달하기 위한 마음으로 리허설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희와 함께 줄리엣을 연기할 강미선은 “열심히 하려고 하면 자꾸 힘이 들어간다”며 “힘을 뺀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라고 말했다.

유니버설발레단 창단 40주년 기념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 기자간담회 [연합]

맥밀란의 작품에서 시그니처는 ‘발코니 파드되’다. 박자에 맞춰 춤추고 연기하는 장면이 아닌 음악에 몰입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한 장면이다. 서희는 이 장면을 “가장 도전적인 장면”으로 꼽으며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작품을 할 때 이전엔 텍스트를 떠올렸는데, 지금은 하나의 단어를 생각한다. 다른 장면은 늘 떠오르는 단어가 바뀌지만, 발코니 장면에선 언제나 ‘첫사랑’을 떠올린다. 자기복제를 하지 않고 연기하는 것이 어려운 장면이다”라고 말했다.

세 줄리엣에 대해 문훈숙 유니버설 발레단 단장은 “강미선과 서희는 연륜있고 성숙한 줄리엣이라면 이유림은 풋풋하고 순수한 줄리엣”이라며 “서희는 굉장히 섬세하고 디테일에 강하고, 강미선은 어떤 역을 맡아도 깊이 고민하고 연구한다. 이유림은 초연 무대임에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고 했다.

세 명의 줄리엣은 총 5번의 공연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서희-다니엘 카마르고(5월 10일 오후 7시 30분·12일 오후 7시), 강미선-이현준(11일 오후 2시·12일 오후 2시), 이유림-콘스탄틴 노보셀로프(5월 11일 오후 7시)의 무대다.

매튜 본 ‘로미오와 줄리엣’ [LG아트센터 제공]
역사상 가장 긴 키스신…파격의 극치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안무가 매튜 본(64)은 파격과 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돌아온다. 기사 작위까지 받은 영국인이 자국의 대문호의 작품을 완전히 비틀었다.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지난 8일 개막, 오는 19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한다.

그의 작품이 파격적인 것은 기존의 작품을 파격적으로 재해석하기 때문이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현대판 뱀파이어로, ‘백조의 호수’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근육질 남성 군무’를 채워넣었다.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 역시 기성세대에 맞서는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젊은 세대)의 이야기로 달라졌다. 작품의 배경과 주인공들 역시 이탈리아 베로나의 명문가 자제들이 아닌 현대판 정신병동과 같은 감금된 공간이다. 게다가 약물 트라우마, 우울증, 학대, 성 정체성 등 지극히 현대적인 사회문제를 녹였다.

매튜 본은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길들여진 작품은 관객에게도 지루하다. 길들여진 작품을 만드는 것에 의미를 느끼지 않는다”며 “사람들을 충격받게 하는데 관심이 있다기 보다는 놀라움이 중요하다. 관객이 기대하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발코니 장면은 백미다. 두 사람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이 장면에서 매튜 본은 또 한 번의 파격을 시도했다. 덕분에 ‘무용극 역사상 가장 긴 키스신’이라는 수사를 가져왔다.

매튜 본 [LG아트센터 제공]

그는 “캐릭터들이 진정한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첫 순간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며 “젊은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면 매우 강렬하고 서로를 떼어놓을 수 없다. 관객들이 자신의 청소년 시절 첫사랑에 빠졌을 때를 기억하도록 젊음의 흥분을 포착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발코니 파드되는 더 격정적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한 몸처럼 뒹굴고 격렬한 몸짓으로 사랑을 나눈다. 본은 “볼이나 입술에 입을 맞추는 보통의 방식보다 도전적인 안무를 만들어봤다”며 “첫사랑은 때때로 어색하고 탐구와 발견의 흥분으로 가득하다”고 귀띔했다.

본의 철학은 과거의 이야기, 추상의 몸짓 언어에서도 우리 사회의 이슈를 꺼내야 한다는 데에 있다. 그는 “고전 작품에서도 현대적이고 심각한 주제를 정직하게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작품에서의 줄리엣이 “내면의 악마와 싸우는 강인한 여성”으로, 로미오가 “별난 성격에 경험이 부족한 사람”으로 설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어쩌면 추하고, 유혈이 낭자하고, 원초적인 이야기, 이전의 그 어떤 버전이나 원작보다 비극적 결말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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