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9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김형석, 백 년의 지혜' 출간 기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전문가·학자들과 만나 '티 타임'을 가지며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104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이렇게 제안했다. 김 명예교수는 지난 9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김형석, 백 년의 지혜'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를 열고 "윤 대통령이 리더이기에 어떤 주장을 하면 장관들은 모두 그 주장을 따라간다. 그러니까 대통령은 장관이 아닌 다방면의 학자를 만나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정치권과 법조계를 향해 날카로운 일침을 가했다. 그는 플라톤의 저서 '국가'에 나오는 "지도자의 무지는 사회악"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학창 시절 가장 공부를 안 한 세대인 운동권 '586세대', 고시를 준비하느라 국제적 감각이 결여된 '법조계 사람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9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김형석, 백 년의 지혜' 출간 기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 |
그는 국내 교육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내가 만약 교육부 장관이라면 우선 줄 세우기에 급급한 '수학능력시험'을 폐지하겠다고 했다. 현재의 수능은 학문적 다양성도, 학생들의 사고력도 담보하고 있지 않다며 "젊은 애들이 고통받고 있다. 아까운 인생을 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다양성과 창의성이 부족하다"며 "같은 문제를 풀어 일렬로 줄 세우는 교육 제도 아래에선 학생들의 다양성과 창의성, 국제 감각을 키울 수 없다"고도 했다.
1920년생인 김 교수는 올해 104세다. 초고령이지만 정신은 또렷하다. 1시간 반 넘게 이뤄진 기자간담회에서 거의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낼 만큼 정정했다. 간혹 질문을 알아듣기 힘들어 곁에서 써준 질문 내용을 읽고 답했지만, 말하는 데 있어선 막힘이 없었다.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9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김형석, 백 년의 지혜' 출간 기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 |
김 교수는 인생에서 제일 좋은 나이는 60~75세"라며 "계란 노른자 나이다. 그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했다.
그는 "은퇴 후 10년간 가장 많이 공부하고 책도 썼다. 철학 분야에서 네 권의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이 중 세 권을 은퇴 후 10년간 썼다"며 "대학에 있을 때까지 강 속에 살았는데 대학을 나오니 바다가 있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늙지 않는 비법에 대해선 "공부를 계속하고 일을 하라", "감정을 젊게 가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감정이 풍부한 사람의 글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글을 보면 감정이 풍부한 쪽에서 더 젊은 에너지가 느껴진다"며 "감수성을 키우고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길 바란다. 그래서 나도, 여러분도 늙지 않고, 오래 일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