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집권한 英도 사장 처벌은 안해…22대 국회서 ‘50인 미만 사업장 중처법 적용’ 반드시 유예돼야” [헤경이 만난 사람 -손경식 경총 회장]

손경식 경총 회장이 지난 3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대담 권남근 뉴스콘텐츠부문장 겸 산업부장] “국내 기업들이 혼자 문 잠그고 사업하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에서 사업을 한다. 이렇게 전체가 한묶음으로 같은 배를 타고 있다.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서로 이해하고 지원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이 지난 3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노동법제가 너무 경직돼 있어 마음이 무겁다”면서 국내 기업들이 직면해 있는 어려운 경영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지난 2월 회원사 만장일치로 네 번째 경총 회장 연임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향상을 위해 노동선진화와 노동개혁 중요성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확실성이 빠르게 증대되면서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 상태가 지속될 경우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는 출발점에서부터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경총이 국내 200개 기업 임원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 기업 10곳 중 9곳이 ‘급변하는 산업구조, 미래세대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노동개혁이 필수적’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여야 간 정쟁이 되풀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경총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와 관련 손 회장은 “여야를 막론하고 ‘나라와 경제’를 생각하는 마음은 같다”면서 “총선 당선자 분들을 한분씩 만나 경영계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전달해 나가겠다”고 했다.

특히 올해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기 시작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손 회장은 “미래 혁신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영세사업장의 경영 의지까지 꺾어버릴 수 있는 법안”이라고 유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이 3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상섭 기자

-최근 국내 경영계가 처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나라 노동법제가 너무 경직돼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된다. 전 세계가 지금 ‘어떻게 경제성장을 하느냐’, 이를 위해 ‘노사관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하느냐’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기존의 관성적인 노동관계 속에서만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노동시장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지를 명확하게 판단하고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많다. 경제 재도약을 위해 규제 완화, 노동 개혁, 세제 개선을 통해 경쟁국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특히 반도체·인공지능(AI) 등은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커 국가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산업인데, 노동시장이나 세제 등 경영환경이 이러한 산업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시나.

▶최근 반도체와 자동차 등 수출이 늘면서 연간 경제성장률은 당초 예상(2.1~2.3%)보다 높은 2% 후반대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긍정적인 메시지가 나와 다행이지만 물가와 환율이 여전히 안정되지 못하고 있는 점은 걱정이다. 글로벌 경기 둔화·고금리 같은 불안 요인들이 올해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경제 회복을 여전히 낙관할 수 없다.

-경총 회장으로서 올해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둘 것 인지 궁금하다.

▶지난 4월 총선이 마무리됐다. 이제 모든 국민이 화합해 경제발전에 매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앞으로 노동시장 선진화와 산업재해 예방, 조세제도 개편 등에 역량을 집중하고 22대 국회에도 다양한 정책 건의를 할 것이다. 당선자분들을 계속 만나면서 경영계 입장을 전달해 가겠다.

다음달 국회가 개원하면 경총이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매우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체 의원 가운데 131명(43.6%)이 새롭게 배지를 달았다. 이들의 총선 공약을 살펴보면 경제 활성화 방안보다는 노동계 요구를 반영한 내용이 많아 우려되는 지점이 있지만, 경영계의 의견을 적극 전달하겠다.

-이를 위해 어떤 의원들을 만나실 생각인가

▶주로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소속 의원들과 접점을 가지게 될 것 같다. 일각에서는 이번 총선 결과로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세제개혁 동력이 상실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하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나라와 경제를 생각한다’는 마음은 같다고 본다. 우리 경제가 잘되길 바란다는 부분에 이견이 없기 때문에 경총은 야권에도 규제·노동·세제 등 주요현안에 대해 경영계 입장을 적극 전달하고, 서로 공감하는 노력을 해 나갈 것이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지난 3일 헤럴드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이상섭 기자

-지난 1월 27일 시행된 50인 미만 기업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와 근로시간 유연화가 최근 주요 화두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대응이 쉽지 않은 50인 미만 기업의 적용 유예를 요구할 것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여러차례 읍소했던 부분이다. 실제 소규모 사업장에 중대재해 문제가 생길 경우 경영자는 사법적인 절차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열심히 사는 ‘자영업 사장님’까지 범법자가 돼선 안된다. 경영자가 구속돼 종업원이 직장을 잃게 되는 결과가 생겨서야 되겠는가.

-중대재해처벌법은 처벌보다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장하셨다.

▶그렇다. 이 법이 지난 2022년 1월 시행되고 2년이 지났지만, 산업재해 예방 효과는 여전히 미비하다는 결과가 통계로 입증되고 있다. 법이 시행된 후 지난 2022년말 기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사업장의 사고 사망자는 전년 대비 8명 증가(248명→256명)했고, 시행 2년 차인 작년 말 사망자 수는 12명 감소(256명→244명)에 그쳤다. 2021년 대비 2년간 비교하면 지난해말까지 4명밖에 줄지 않았다.

지금 선진국은 중대재해 예방 활동에 집중하면서 문제 개선에 주력하고, 실질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진보정당인 노동당이 집권할 정도로 노동친화적인 영국에서도 처벌보다는 벌금에 방점이 찍힌다.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은 사망자 발생 시 경영자 개인은 처벌하지 않고 법인에 대한 벌금만 부과하고 있다. 22대 국회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한 숙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지난 3일 헤럴드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이상섭 기자

-정부가 근로시간제도 개편안 등을 추진했지만 결국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참 아쉬운 대목이다. 정부가 원래 추진했던 안은 전체 근로 시간을 늘리자는 것이 아닌데, 일부 노동계에서 ‘장시간 근로를 조장하는 주 69시간제’라는 왜곡된 여론을 조성하면서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사회적 대화가 다시 시작된 만큼 노사정이 함께 현재의 경직된 근로 시간 제도를 개선해 각 상황에 맞게 노사가 근로 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일부 기업에서는 주문량 증가, 업무량 폭증 등 업무집중이 필요한 경우 현행 주 12시간 연장근로 제도 운용으로는 업무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정부가 작년 3월 발표한대로 연장근로단위를 ‘주’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해야 한다. 산업현장에서도 획일적인 주 52시간제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야권에서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조·3조 개정안) 입법을 다시 추진 할 것으로 보인다.

▶노란봉투법은 산업현장의 혼란과 죄형법정주의 위반을 이유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해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법안이다. 다수당으로서 야당이 재입법 추진을 신중하게 재검토해 주길 당부드린다.

현재 우리 노사관계는 일부 강성 노동운동 세력이 주도하고 있어 서로 대립적인 양상을 띤다. 노동법제도도 노동조합에 부여된 권리들에 비해서 사용자의 대응수단은 부족하다. 선진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산업현장의 법질서 확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경총이 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해 직접적으로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면.

▶노동시장 선진화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중요한 과제다. 경총도 최근 노동개혁추진단을 신설해 활동할 예정이다. 산업현장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듣고, 노동 개혁이 좀 더 효율적으로 추진되도록 지원할 것이다. 앞서 설치된 ‘중대재해 종합대응센터’ 운영에도 속도를 내겠다. 종합대응센터는 여러 차례 지방에서 중처법 관련 강연을 하고, 기업의 산업재해 예방을 적극 지원해 왔다.

-경쟁국 대비 높은 법인세, 상속세도 기업들이 부담을 호소한다.

▶국내 상속세와 법인세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비해 세부담이 과도한 것이 사실이다. 이때문에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고 국가경쟁력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평균 22%인데 반해, 한국은 24%다. 최소한 평균에는 맞춰야 한다. 낮아진 법인세 만큼 기업의 투자 여력이 생긴다. 연구개발 등에 투자하고 미래 수익 창출에 쓸 수 있는 것이다.

상속·증여세도 문제다. 국내 최고세율은 50%에 달하고, 기업을 승계받을 경우에는 할증으로 최고 60%까지 높아진다.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이런 상속·증여제도를 운영하는 나라가 없다. 상속세 최고세율은 OECD평균인 25%수준으로 낮추고, 과세방식도 유산전체가 아닌 실제 취득한 자산에 대해서만 과세하는 ‘유산취득세’를 도입해야 한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지난 3일 헤럴드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이상섭 기자

-끝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여야와 노사를 막론하고 다같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다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적 견해차가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경총은 경영계의 입장을 계속 전달해 갈 것이다.

국내의 여러 규제들은 외국 기업이 우리나라 투자를 막는 사례가 될 수도 있다. 앞서 한국GM 사장을 지낸 카허 카젬 전 사장(현 상하이GM 총괄부사장)은 국내 근무 당시 불법파견 의혹으로 여러 차례 출국 금지를 당했다. 이런 문제가 계속 생기면 외국인 임직원들은 한국에서 근무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다. 외국 기업 입장에서도 한국에서 근무할 사람이 많아야 투자도 같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개선을 간곡히 건의드리고 싶다.

손경식 회장은 누구? 자타공인 ‘소통’ 대명사…노동계·MZ세대와도 접점

올해 초 열린 ‘2024 노사정 신년인사회’에서 손경식(오른쪽)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김동명(왼쪽) 한국노총 위원장, 이정식(가운데) 고용노동부 장관과 함께 떡을 자르고 있다. [연합]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국내 경제계 인사를 통틀어 대표적인 ‘마당발’로 꼽힌다.

경총과 CJ그룹의 회장직 외에도 한일경제협회고문, 한미우호협회 이사장,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으며 각계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있다.

최근 손 회장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0년대 초 출생)와 접점을 늘리는 데 매진하고 있다. 지난 2022년에는 부인과 함께 국내 대표 아트페어인 키아프 서울을 찾아, 대중매체 캐릭터 기반의 만화를 그리는 잭슨 심 작가의 작품을 관람했다. MZ세대에게 친숙한 소재를 쓰는 덕분에 젊은층을 중심으로 선호도가 높은 작가다.

그는 젊은층이 많은 성남과 판교 중심의 IT 기업들을 직접 찾아 다양한 활동을 벌이는 한편, 사회적으로는 ‘청년 고용을 응원한다’는 메시지도 여러 차례 남겼다. 손 회장은 경총 등을 통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반기업 정서를 해소해야 한다”면서 MZ세대와의 소통 확대·홍보 강화를 주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결성된 이른바 ‘MZ노조’에 대해서도 우호적 입장이다. 손 회장은 “MZ세대 근로자 조직체의 장점은 전통적인 노조보다 더욱 합리적인 조직원이 많다는 것”이라면서 “앞으로 MZ세대가 만들어갈 노조 문화에 대해서 경영계도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손 회장은 “노사관계는 ‘주고받고’ 양보하는 관계가 정착돼야 하는데, 일정 부분에서는 경영계의 양보로 이뤄진 결실에도 ‘더 받겠다’라고 나오는 부분들이 있다”면서 “MZ세대 노조는 앞으로 기존노조와 다른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손 회장은 경영계 인사 중에서도 노동계와 가장 접점이 많은 인물로 손꼽힌다. 그는 최근 개최된 제 36회 한국노사협력대상 시상식에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등 노동계 인사들과 반갑게 대화를 나눴고, 이에 앞서 한국노총·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등 주요 노동계 인사들과 식사자리를 갖기도 했다. 경총도 한국노총과는 협조적인 관계, 민주노총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다.

실제로 노사 간 극명한 견해차에도 매년 최저임금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될 수 있는 배경에는 경총의 수장인 손 회장이 자리하고 있어서라는 평가도 나온다.

손 회장은 올해 최저임금 협상에 대해 “올해 겨우 시작하는 단계에 있고, 노사 양측에서 희망하는 사항들을 조율하는 과정”이라며 “지난해는 2.5% 인상으로 합의했는데, 최근 경제 상황에서는 임금 문제가 작은 문제가 아닌 만큼 의견을 터놓고 대화를 나눠보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업종별로 최저임금에 있어서 차등을 두고자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여기에 대해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면서 “언젠가는 이 문제가 해결돼야 하는 만큼 시간을 갖고 대화를 이어나간다는 기조”라고 덧붙였다.

CJ그룹 회장으로서 손 회장이 최근 주목하는 지점은 ‘K-푸드’와 ‘글로벌 사업’이다. 손 회장은 “그룹의 사업이 과거에는 국내에 치중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해외로 확대하면서 다변화한다는 기조”라면서 “외국에서 K-푸드로 불리는 우리 한국음식이 맛있어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다. 특히 미국에서 한국음식 수요가 늘어나고 있어, 지난해에만 현지 공장을 3개 지었다”고 설명했다.

고령에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을 묻자 손 회장은 “잘 자고, 잘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한다”면서 “재활운동도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정리=양대근·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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