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계가 1분기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을 앞세운 ‘선별 수주’ 전략으로 중국 점유율을 3%포인트대 차이로 바짝 뒤쫓고 있지만, 막강해진 중국의 조선 경쟁력에 점유율로 능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중국이 가격 경쟁력에 기술력까지 갖추며 한국이 강한 LNG선 등 고부가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도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하면서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위기감이 감지된다. 향후 글로벌 수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내 조선산업의 경쟁력과 규모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해운 및 조선업 1분기 동향에서 “중국은 한국보다 더 큰 생산 능력을 유지하고 운영 중”이라며 “자국의 전략적 발주 확대, 과거 일본이 수주하던 중형선 시장 잠식, 대형선까지 영업력을 확대하는 등 점유율을 점차 늘려가고 있어 중국을 점유율에서 능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분석했다.
현재 중국은 글로벌 신조선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세계 신조선 발주량 1034만CGT(표준선환산톤수) 가운데 중국이 약 487만CGT를 수주하며 전체의 47.1%를 차지,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은 449만CGT, 43.4%로 2위를 기록하며 중국을 3.7%p차로 바짝 뒤쫓았다. 한국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수주량은 32.9% 늘었으며, 수주액은 41.4% 증가한 135억7000만달러(18조8300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분기 실적 기준으로 지난 10년 중 3번째로 많은 액수다.
다만, 한국의 1분기 호실적은 카타르 LNG선 2차 프로젝트 물량 29척 전량을 수주하고 대형 암모니아운반선(VLAC)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인 덕이다. 지난해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 단 한 척도 수주하지 못했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8척 수주한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분기 한국의 수주 선종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LNG선은 한국의 1분기 전체 수주량 중 55.4%로 절대적 비중을 차지했다. 또, LPG선은 VLAC 겸용 20척을 포함해 총 25척을 수주, 전체 수주량의 21.8%를 기록했다.
그러나 국내 조선업계에 중요한 선종 중 하나로 꼽히는 컨테이너선은 1분기 중 단 한 척도 수주하지 못했다. 연구소는 “1분기 수주가 양호한 점은 긍정적이나 해운시장 규모가 작은 LNG선이나 LPG선의 비중이 77%를 차지한 반면, 3대 주요 선종 중 유일하게 탱커만을 수주하며 전체 비중의 20%에 불과한 점은 다소 기형적인 구조”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1분기와 같은 수주 호조가 올해 내내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4월 우리나라의 선박 수주 물량은 67만CGT로 14%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중국은 358만CGT를 확보하며 점유율 76%를 기록했다.
연구소는 “1분기 중 국내 조선업계가 점유율을 크게 확대한 것은 카타르발 LNG선의 계약이 해당 기간에 몰린 특수한 상황 때문”이라며 “(향후) LNG선 신규발주는 카타르 발주 종료 후 일부 개발 프로젝트 관련 물량 외 많은 물량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중국은 대형부터 중소형까지 다양한 선종을 수주하며 점차 공략 시장을 다각화하고 있는 상태다. 관련 업계에서는 중국이 과거에는 ‘저가물량 공세’에만 의존했다면, 최근에는 기술력도 갖추기 시작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연구소는 중국이 1분기 중 유일한 대형 컨테이너선 물량이었던 일본 선주의 1만3000TEU(길이 6.1m 표준컨테이너 1대를 세는 단위)급 12척 전량을 수주하며 점차 대형 시장에서의 입지도 넓히고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LNG선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수년간 독점적 지위를 누렸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중국이 정부 주도의 적극적인 설비 투자를 바탕으로 LNG선 생산 능력을 키우면서다. 중국 조선사는 자국 선사 발주 물량을 발판으로 건조 노하우를 쌓았고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선사 프로젝트 수주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중국선박그룹(CSSC) 산하 후동중화조선이 카타르에너지로부터 27만1000㎥급 Q-맥스 LNG 운반선 18척에 대한 건조 계약을 따냈다. 계약 규모는 약 60억달러(약 8조2600억원)로 전해진다. Q-맥스급 LNG선은 표준 선종인 17만4000㎥급보다 50%가량 커 척당 선가도 최소 5000억달러 이상 높다.
중국이 과거에는 저렴한 가격을 앞세웠다면, 최근에는 가격을 높이고도 시장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한·중 간 LNG 신조선가 격차는 2022년 기준 15~20%에 달했으나 5% 안팎으로 줄어든 실정이다.
문승학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기추진체계사업부장은 최근 제주에서 열린 국제e모빌리티엑스포 현장에서 “한국 조선이 후발주자인 중국에 엄청나게 따라 잡히고 있다”며 “2년 전만 해도 LNG선, 메탄올선 시장에서 중국과 시장 점유율 격차가 50% 났는데 작년부터는 5% 정도밖에 안 난다”고 우려했다.
메탄올선 분야에서도 중국 조선사가 올해 1~2월에만 18척을 수주하는 등 발주 물량을 쓸어 모으고 있다. 국내 조선사가 선별 수주 전략에 따라 다른 고부가가치 선박을 우선시한 영향이 크지만 중국의 메탄올선 건조 역량이 강화되고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게다가 중국은 메탄올 생산·공급 역량까지 갖추고 있어 메탄올선 시장에서만큼은 국내 조선사를 추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은 내년까지 전 세계 친환경 선박의 자국 생산 비중을 50%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LNG선, 메탄올선 등 수주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때문에 한국 조선업이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생산능력과 경쟁력, 시장 신뢰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조선3사는 다음 스텝으로 전기추진 선박 관련 기술 개발에 나서는 등 차세대 기술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연구소는 “(한국은) 생산능력과 경쟁력, 품질을 유지하고 국가경제의 한 축으로서 부가가치 창출 능력과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규모 신조선 가능 국가로서의 입지를 유지하고 공고히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며 “수주 선종이 일부 선종에 집중되고 있는 점, 인력난에 의한 생산시스템 안정화에 어려움을 겪는 점 등 문제점에 대한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윤희·김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