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 엑스] |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사람의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고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인공지능(AI)을 상상해 보세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오픈AI 사무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복잡한 방정식으로 채워진 화이트보드 앞에 서 있었다.
수석 엔지니어인 제나는 그에게 “최근 실험에서 인공지능의 반응은 더 미묘해지고, 더 인간적이에요”라고 말했다.
“바로 그거에요.” 샘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기술 그 이상의 것, 인간의 잠재력을 확장하는 것이 되겠죠.” 그들은 밤새 일을 했고, 마침내 흥분할 만한 결과를 만들었다. 올트먼은 새로운 챗GPT 채팅창에 “안녕, 챗GPT”라고 입력했다.
“안녕하세요, 샘!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바로 답장이 왔다. 그러자 환호성이 방을 가득 채웠다. 그들은 해냈다. 인간과 지능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AI를 만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올트먼은 하늘을 봤다. 새 시대가 시작된 것 같았다.
이 글은 챗GPT 최신 버전인 GPT-4가 작성했다. “샘 올트먼이 챗GPT를 개발한 순간을 소설처럼 써줘. 단, 사실에 근거해서”라는 프롬포트(명령)에 따라 몇 초 만에 완성됐다.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있어 일부 삭제·수정을 해야 했지만 글 자체는 그럴 듯하다.
기자가 지시한 대로 ‘오픈AI 본사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다’는 사실과 ‘인공지능은 인간의 잠재력을 확장하는 것’이라는 올트먼의 철학도 담겼다.
요즘 가장 뜨거운 키워드를 하나 꼽으라고 하면 단연 챗GPT일 것이다. 지난해 출시된 GPT-4는 미국 대입 시험인 SAT, 변호사 시험도 상위 10% 성적으로 통과할 만큼 놀라운 기술력을 구현해냈다.
챗GPT는 인류에게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인류를 멸망 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오픈AI 마저도 한때 똑같은 고민 때문에 올트먼을 퇴출시켰지만 닷새만에 그를 불러들였다. AI개발 속도를 둘러싼 ‘부머(boomer·개발론자)’ 대 ‘두머(doomer·파멸론자)’ 의 싸움에서 일단 부머가 승리를 거뒀다.
아이비리그 중퇴, 스타트업 대박, 투자회사 사장까지. 2000년 초 혜성처럼 등장한 올트먼은 실리콘밸리에서는 ‘제 2의 빌 게이츠’로 불린다. 하버드대 2학년 때인 19세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시작한 게이츠처럼 올트먼도 같은 나이에 소셜미디어 ‘루프트(Loopt)’를 창업했다. 그 역시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는 2학년 때 중퇴했다.
루프트는 대학 동기인 친구 닉 시보와 개발한 서비스다. 올트먼은 우연한 계기로 창업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같이 밥을 먹기로 한 친구가 어디 있는 지 도통 알 수 없자,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친구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면 편하지 않을까?”
위치 서비스가 전무했던 2005년 루프트 서비스는 혁명적이었다. 루프트가 있으면 친구들에게 자신의 현재 위치를 페이스북, 트위터(X의 옛 이름)에 알릴 수 있었다. 올트먼은 루프트 서비스를 휴대폰에 장착하면 ‘대박’이 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는 한계가 있었다.
2008년 애플의 최신 기술을 소개하는 행사인 '세계개발자대회(WWDC) 2008'에 등장한 23살의 샘 올트먼 당시 루프트 최고경영자(CEO). [유튜브 CNET 화면 갈무리] |
2년 뒤, 마침내 올트먼에게 기회가 왔다. 2007년 애플이 스마트폰 ‘아이폰’을 공개하면서다. 혁신적인 서비스가 또 다른 혁신을 만나 날개를 얻게 된 셈이다. 23세 CEO 올트먼은 2008년 애플의 최신 기술을 소개하는 행사인 ‘세계개발자대회(WWDC) 2008’에 등장해 아이폰의 새 어플, SNS와 지도 앱을 합친 루프트를 소개했다. 세상을 바꿀 ‘비저너리(Visionary)’의 첫 공식 무대 데뷔였다.
이후 루프트는 더 잘 나가는 기업이 된다. 아이폰4부터 루프트의 서비스가 장착됐고, 안드로이드, 블랙베리에도 루프트의 서비스가 들어가게 됐다.
2012년 올트먼은 루프트를 4340만달러(약 591억1000만원)라는 거액에 매각한다. 함께 회사를 세우고 키웠던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닉 시보와는 결별한다. 이때 Y 콤비네이터(YC) 공동 창업자 폴 그레이엄이 올트먼에세 YC 사장 자리를 제안한다. YC는 미국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스타트업 투자회사다. 그를 오래 전부터 눈여겨보고 결국 사장 자리까지 제안한 YC 공동 창업자 폴 그레이엄은 CNBC과의 인터뷰에서 올트먼에 대해 “나는 그를 만나고 3분 만에 ‘빌 게이츠가 19살 때 바로 이런 모습이었겠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올트먼은 어린 시절부터 진취적이었다. 그가 가장 먼저 도전한 것은 여덟 살에 선물 받은 애플 컴퓨터를 분해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더뉴요커는 “그는 8세에 이미 소프트웨어를 코딩하고 분해했다”며 “애플 컴퓨터는 그와 세상을 이어주는 생명줄 같은 존재가 됐다”고 표현했다.
보수적인 세상과 싸웠던 경험도 있다. 만 16세에 커밍아웃(성 정체성을 주변에게 알리는 일)한 뒤로는 성소수자 가시화를 거부하는 학교와 사회에 도전해야 했다. 올트먼이 살던 시카고 지역은 당시 성소수자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가 다녔던 고등학교만 해도 성소수자 집회를 준비했다가 기독교 단체의 반발로 무산됐다.
그러자 올트먼은 온 동네를 돌며 연설을 했다. 그는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히며 “학교가 억압적인 곳이 됐으면 하는지, 다른 생각에 열려 있는 곳이 됐으면 하는지” 물으며 변화를 호소했다.
올트먼의 학교 상담사 매들린 그레이는 당시를 회상하며 더뉴요커에 “샘이 한 일은 학교를 바꿨다. 누군가 아이들로 가득 찬 커다란 상자를 열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2016년 당시 Y 콤비네이션 사장이었던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남동생인 잭 올트먼이 인터뷰하고 있다. [Y 콤비네이션 유튜브 화면 갈무리] |
그의 든든한 지원군은 가족이었다. 그는 1985년 미국 일리노이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독일서 이민 온 중산층 유대인 가족의 장남으로 남동생 2명과 막내 여동생 1명이 있다.
남동생 잭과 맥스는 10년 가까이 그와 함께 사업을 하기도 하고, 투자자를 함께 모은 동료이기도 하다. 삼형제는 단 한번도 재산이나 사업을 두고 다툰 적이 없다. 그만큼 샘에 대한 동생들의 신뢰가 크다고 한다. 잭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형과 보드게임을 했을 때 모든 게임에서 형이 승리했다”며 “샘은 항상 ‘나는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기에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2022년 11월 챗GPT 출시를 알리는 게시글. [오픈AI 홈페이지] |
스타트업 투자회사 사장으로 승승장구하던 올트먼은 갑자기 왜 인공지능에 빠진걸까. 올트먼의 엑스 프로필 자기소개란에 답이 있다.
“인공지능은 멋져. 내 생각엔.”
올트먼은 인공지능 기술이 인류에게 위험한 면이 있긴 하지만 인간의 잠재력을 확장하는 최고의 기술로 생각했다. 루프트 매각 10년 후인 2022년, 올트먼이 이끄는 오픈AI에서 챗GPT를 공개한다. 하지만 IT 기업 CEO가 행사장에 등장해 혁신적인 서비스나 기술을 발표하는 모습과는 달리 챗GPT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유명인과 협업 광고는 물론이고 컨퍼런스콜도 없었다.
2022년 11월 오픈AI 페이지에 ‘챗GPT를 소개합니다’라는 게시글 제목 밑에 GPT를 사용할 수 있는 아이콘만 달랑 있었다. 게시글도 담담하게 GPT의 기술을 소개하고 예시를 몇 개 보여준 뒤 기술의 한계까지 서술한 게 다다.
일체의 홍보도 없이 챗GPT는 두 달 만에 월 사용자 1억 명을 돌파했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기록을 썼다.
원래 챗GPT는 일부 직원들만 아는 소규모 프로젝트였다.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챗GPT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는 ‘로우키(low-key)’ 프로젝트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심지어 올트먼은 챗GPT라는 이름이 전혀 내키지 않았다는 발언도 했다. 지난해 한 팟캐스트에서 올트먼은 “끔찍한 이름이지만 너무 유명해져서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며 “어떤 마케팅 담당자도 챗GPT를 이 서비스의 이름으로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농담조로 한 이야기지만, 챗GPT가 얼마나 큰 기대 없이 출시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올트먼이 이런 출발을 했던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당시 대규모 언어모델(LLM)은 성공하기 힘든 기술이었다. 심지어 GPT가 나오기 일주일 전, 메타의 생성AI ‘갤럭티카’가 수준 미달의 기술로 3일 만에 서비스를 종료하는 ‘굴욕’을 당했다.
지난해 챗GPT가 만들어지던 당시를 회상하며 올트먼은 엑스에 “1년 전 오늘 우리는 다음날 아침 출시할 챗GPT를 마무리하며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는데…”라고 썼다. 개발자인 그조차 1년 만에 이렇게 큰 변화가 올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보인다.
[샘 올트먼 엑스(옛 트위터, X) 프로필] |
올트먼은 정치적 소신을 과감히 드러내는 기업인이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자, 트럼프 지지자 100명을 인터뷰했다.
올트먼은 트럼프가 당선된 후 반(反) 트럼프 시위에 참여했을 정도로 트럼프 정책을 반대하는 1인이다. 그는 블로그에 “인터뷰 과정에서 이렇게 많은 무슬림, 멕시코인, 흑인, 여성과 대화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트럼프 지지자들이 무엇을 불안해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고 싶었다”고 썼다.
반면 올트먼의 사생활은 크게 알려진 게 없다. 올초 동거인인 호주 출신 소프트웨어 개발자 올리버 멀헤린과 하와이에서 소규모 결혼식을 올렸고, 지인의 엑스를 통해 사진이 공개된 정도다. 주례는 동생인 잭 올트먼이 맡았다.
포브스에 따르면 올트먼의 자산은 10억달러(약 1조3500억원)로 전세계 부자 순위 2692위다. 현재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두 곳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캘리포니아에 있는 집은 목장 주변에 있다.
지난 1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소프트웨어(SW) 올리버 멀헤린과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엑스 캡처] |
그의 집을 방문한 케이드 메츠의 뉴욕타임스(NYT) 기고글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메츠는 “인간을 파괴할 수도 있는 인공지능으로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겠다’는 올트먼의 생각이 그의 집과 닮았다”고 말했다. 메츠는 글에서 “샘 올트먼은 집에서조차 모순을 안고 사는 사람이다. 소를 키우는 채식주의자”라며 “그는 배우자가 육류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1997년 IBM 체스 컴퓨터 '딥블루'가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와의 승부에서 2승 1패 3무로 승리했다. [AP] |
“1997년 IBM의 체스 컴퓨터 ‘딥블루’가 체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겼을 때, 사람들은 체스가 망할 거라 말했다. 체스의 종말이 올 것이라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체스가 인기 있었던 때가 있었나.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체스 두는 걸 보지도 않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협할 것인가”는 올트먼이 참여하는 대형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질문이다. 올해 1월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도 그랬다. 그러자 그는 체스 이야기를 꺼냈다. 올트먼은 “인간은 더 나은 도구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전에도 획기적인 기술이 나왔지만 인간들은 여전히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챗GPT를 활용해 업무를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점에서 올트먼의 말은 맞는 것 같다. 지난달 시장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 성인 가운데 ‘챗GPT를 사용해 본 적이 있다’고 답한 이들의 비율은 23%였다. 지난해보다 5%포인트 늘었다. 특히 석·박사 학위를 소지한 미국 내 취업자 37%가 업무에 챗GPT를 쓰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도 현실이다. 당장 얼마 전만 해도 오픈AI가 공개한 동영상 생성AI ‘소라(Sora)’는 영상 제작자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저작권 이슈도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다. 미국 투자회사 골드만삭스는 생성 AI가 “3억 개의 정규직 일자리를 날릴 수 있다”고 추정했다.
올트먼도 이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보편적 기본소득(UBI)’이다. 2021년 올트먼은 자신의 블로그에 “사람들은 여전히 일자리를 가지겠지만, 일자리 중 상당수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처럼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일자리는 아닐 것”이라며 생계 유지를 위해 기본 소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올트먼의 상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공지능 회사가 미국인을 단어 그대로 ‘먹여 살리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자신의 블로그에 “인공지능 회사는 10년 안에 미국 모든 성인에게 연간 1만 3500달러(약 1830만원)를 지불할 정도로 막대한 부를 창출할 것”이라고 썼다. 기업이 돈을 벌고, 미국 국민은 기본소득으로 미래를 꿈꾸게 하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재산을 불리는 기업이 아닌, 인류에게 긍정적 영향을 꿈꾸는 올트먼이 이상주의자로 끝날까, 인류를 바꾸는 기업인이 될까.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될 것이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AF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