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표와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연합] |
[헤럴드경제=정윤희 기자] 거대야당이 22대 국회가 개원하기도 전부터 금융·정유사에 대한 ‘횡재세(초과이윤세)’ 도입 재추진을 예고하고 나서 정유업계 내 불안감이 또다시 확산하고 있다. 올해 들어 상승한 국제유가 덕에 지난해 말까지 기록한 적자를 탈피하는데 성공했으나, 오히려 정치권의 표적이 된 데 따른 것이다.
업계서는 적자를 기록할 때는 잠잠하다가 흑자로 돌아서자마자 ‘횡재세’ 도입이 논의되는 것이 억울하다는 분위기다. 특히, 국제유가·정제마진 변동 등에 따라 실적이 널뛰는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시적 영업이익을 ‘횡재’로 규정하고 과세대상으로 삼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입장이다. “유가가 오르면 오히려 걱정”이라는 토로가 나오는 이유다.
14일 정치권과 정유업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금융/정유사를 대상으로 하는 횡재세 법안(법인세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횡재세는 외부 요인으로 인해 일정수준 이상의 이익을 얻은 기업들 대상으로 초과 이익을 환수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특히, 민주당은 횡재세 법안을 ‘처분적 법률’로 입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처분적 법률’은 행정부의 집행, 사법부의 재판 등이 없이 입법만으로 자동적 집행력을 가지는 법을 말한다. 다만, 삼권분립을 위반하는 위헌소지가 있어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된다.
민주당이 위헌 논란이 있는 ‘처분적 법률’까지 검토하면서 횡재세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강한 의지가 반영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지난 총선 과정에서도 횡재세 도입을 언급했으며, 지난달 2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고유가 시대에 국민 부담을 낮출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유업계는 횡재세 도입 재추진에 난감한 기색이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법안이 발의되지는 않은 만큼 국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유가가 상승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횡재세 도입 논의가 억울하다는 기색이다.
업계서는 국내 정유사의 수익구조가 단순히 유가가 오르면 수익이 나는 글로벌 정유사와는 다르고, 대부분의 물량을 수출하는 만큼 횡재세 도입 근거가 미비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유럽 등 글로벌 기업의 경우 직접 채굴한 원유를 팔아 수익을 내지만 국내 정유사의 경우 해외서 들여온 원유를 정제한 뒤 판매해 정제마진으로 수익을 보는 구조다. 원유는 100% 수입에 의존하는 만큼 유가 변동에 따라 실적이 널 뛸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 올해 1분기 정유4사(SK이노베이션 석유부문, S-OIL, HD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의 합산 영업이익은 1조7670억원을 기록했으나, 직전 분기인 지난해 4분기의 경우 396억원의 합산 영업손실을 봤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이익이 났을 때 횡재세를 물린다면 적자가 났을 때는 보전해주겠다는 건지 의문”이라며 “유가는 전쟁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 등에 따른 변동성이 큰 만큼 정유사 실적도 매분기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가는 올랐지만 2분기 들어 정작 정유사의 수익지표가 되는 정제마진은 떨어지고 있어 정유사들의 실적이 악화될 것이란 전망마저 나오는 상태다. 정유업계 평균 정제마진은 지난 2월 첫째주 배럴당 15.1달러를 기록한 후 3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다. 5월 첫째주에는 손익분기점(5달러)에 가까운 6.2달러까지 떨어진 상태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정유사가 돈을 많이 버는 업종이라는 오해가 있는데 사실 정유업계의 영업이익률은 1.4%밖에 안된다”며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이 6%를 넘어가는 상황인데 그 반의 반도 안되는 이익률에도 횡재세를 부담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가는 오르긴 했어도 정작 정제마진 추이를 보면 1월부터 5월까지 계속해서 우하향하는 상황”이라며 “유가가 오르면 일견 정유사들은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현 상황은 정 반대로 가고 있다”고 했다.